10월의 독립운동가 김철(金澈)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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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11-15작성자 관리자조회수 220 |
◈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대한교민단 핵심간부로 활동 ◈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김철(1886.10.15~1934.6.29)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8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1917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1919년 신한청년당 특사로 국내로 들어와 국제정세를 알리며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돌아가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불란서조계에 대한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하였으며, 4월 10일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제2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임시정부의 재무위원 겸 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8월 5일 임시정부 교통차장에 임명되어 당시 취임하지 않았던 총장 대리를 겸하면서 맹활약하였다. 1920년 1월 김구·손정도 등과 함께 의용단(義勇團)을 발기하여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3월 임시정부 선전위원회가 조직되자 국내와 해외 동포사회에 임시정부의 활약상을 소개하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1924년에는 임시정부 회계검사원 검사장, 1926년에는 임시정부 국무원, 1930년 군무장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의 부흥에 힘썼다. 1932년에는 상해 한인동포들의 권리증진과 생활안정을 위해 조직된 대한교민단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임명되는 등 임시정부와 교민단체의 핵심간부로 활약하였다. 1934년 국무위원으로 재차 선임된 뒤 재무장의 일을 맡아 재정확보에 힘을 쏟는 등 민족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해 애쓰다 절강성 항주에서 1934년 6월 29일 신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널리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사진을 10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 선생에 대한 학술 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