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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이명하(李命夏) 선생
작성일 2006-12-07작성자 관리자조회수 317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내와 중국에서 의병과 독립군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몽학(夢鶴) 이명하(1878.1.23~1921.3.3)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위정척사론을 견지하던 유인석의 문하생으로 성리학을 수학하면서 전통적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식학문을 수학하여 신구학문을 겸비하고 근대적 민족의식을 습득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7조약이 강제 체결되어 국권이 훼손되고 일제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쓰러져가는 국권을 바로 잡고, 국망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의병운동에 투신하였다.

유인석의 문하로 문경에서 거의한 이강년 의병진에 참여하여 소모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군경과 무장투쟁을 벌이고, 친일관리들을 제거하여 민족의기를 드높였다. 또한 이강년 의병장과 함께 1907년 말 13도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진공전을 전개하는 등 각지에서 의병운동을 촉구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직후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일본의 식민지 국가가 되자 서간도로 망명하여 이진룡 의병장과 함께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중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서간도 일대의 의병계열 독립운동 단체들과 합류하여 대한독립단을 창단하고, 무장대를 조직하는데 동참하였다.

1920년 일본군이 만주에 출병하여 우리 동포들을 학살하자 중국 안동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긴 후 일본 경찰관들과 격전을 벌여 일경을 처단하는 무장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경의 추격을 받아 1921년 3월 3일 일본 경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12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는 선생에 대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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