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날 계기, 독립운동가 154명 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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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12-07작성자 관리자조회수 295 |
▣ 국가보훈처에서 403명 발굴 올해 총 525명 포상 ▣ ▣ 전문사료발굴분석단 지속적인 공적발굴노력의 결실 ▣ ▣ 노령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 홍파, 임정수립 주요인물 홍도선생 포상 ▣ 국가보훈처는 제 67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노령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홍파(洪坡)선생을 비롯해 사할린의용대 사령관인 박일리아(朴允天),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주요인물인 홍도(洪濤)선생, 孫貞道 선생의 모친이며 대한애국부인회 총재를 지낸 오신도(吳信道)여사 등 15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73명(독립장 2, 애국장 22, 애족장 49), 건국포장 22명, 대통령표창 59명 등이며, 생존자는 없고, 여성은 3명이다. 훈장은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되는 기념식에서, 해외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본인과 유족에게 전수된다. 유족이 확인되지 않는 분의 훈장은 정부에서 보관한다. 이번 순국선열의 날 포상자 154명 중 137명은 정부에서 자료를 찾아 포상하게 되었으며, 금년에 총 525명을 포상하였고 그 중 403명은 정부에서 발굴했다. 이번 순국선열의 날 포상은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 독립유공공적자료의 분석과 보완을 통해 공적을 확인한 후, 독립유공자서훈공적심사위원회의 분과위원회와 제2심사위원회, 합동심사위원회 등 총 7차례의 심도 있는 심사를 거쳐 포상자를 결정했다. - 특히,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는 일본의 외무성 자료인「불령단관계잡건 시베리아편」을 입수하여「스탈린시기 정치희생자 목록」과 대조하여 故 홍파(洪坡)선생을 비롯한 17명의 만주·노령지역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였고, 1907~1909년까지 일제가 의병을 탄압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한「폭도에 관한 편책」등의 정보보고서에서 故 金斗鎭 의병 등 30명의 공적을 발굴하였으며, 일제시기의 판결문에서 故 朴允實 선생 등 3·1운동 관련자 34명을 발굴해 이번에 포상하게 됐다. - 이번 포상자 가운데 경북 고령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던 故 박재필 (朴在弼 1884~1957)선생은 손자 박태상이 77년 포상을 신청하였으나 공적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포상을 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사료발굴단에서「범죄인 명부」「대구지방법원 판결문」「고등경찰요사」등에서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30여년 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게 됐다. - 1919년 전북 전주 공립 제2보통학교 재학 중 3·1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6개월의 옥살이를 한 故 김재흥(金在興 1888~1953)선생은 유족이 고령이고 병고가 심해 거동이 불편하여 포상신청을 할 수 없는 사정을 알고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 집에까지 찾아가 신청서류를 받아와 이번에 포상을 하게됐다. - 이렇게 이번에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유족이나 후손을 찾아 행적 등 추가공적사항을 확인해 포상한 인원은 43명이다. □ 이로써 건국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총 10,623명으로 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793, 애국장 3,326, 애족장 4,029, 건국포장 632, 대통령 표창 1,726명 등이다 □ 앞으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을 중심으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 독립운동사료 소장기관과 협조하여 대대적인 사료발굴·분석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 이번에 포상을 받는 분 중 주요훈격에 추서된 분들의 주요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는 분은 2명으로 - 故 이민환(李珉煥 1899 ~ 1973)선생은 홍파(洪坡)로 더 잘 알려진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1917년 함남 홍원에서 한인 순사를 처단하고 북간도로 망명하여 3·1운동에 참여하고 연해주에서 소년모험단을 조직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1921년 귀국하여 함남 일대에서 군비단 거점 확보 및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언도받고 복역 중 탈옥하여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赤旗團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 故 한봉철(韓奉喆 1898 ~ 1936)선생은 1919년 경기도 양평에서 3·1운동을 주도하여 10개월의 옥살이를 하였고 1920년 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1925년 혁청단 선언 강령사건으로 수일간 옥고를 치른 후 서간도로 망명하여 남만청년동맹을 창립, 조선공산당 만주 비서부 조직부장, 1930년 유격대 조직 등 1936년 순국할 때까지 20여년간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무장투쟁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故 朴일리아(朴允天 1891~1938)선생은 1919년 러시아에서 항일무장단체인 사할린의용대를 결성하여 지휘관으로 니콜라예프스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고, 1921년 自由市 慘變 때 러시아 적군의 독립군 무장해제에 저항하여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 했다. 그 후 전한군사위원회 위원, 高麗革命軍政議會 軍政委員으로 일본군이 후원하는 러시아 백군과 전투를 벌였다. 1924년 大韓革命統軍部 中東區 부사령관에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그 후 러시아에서 거주하다 1938년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 전남 광주에서 3·1운동을 주도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는 故 이주상(李周庠 1867~1902)선생과 광주 崇一學校 학생으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건국포장을 서훈 받는 이창호(李昌鎬 1902~1931) 선생은 부자지간으로 이번에 함께 서훈을 받게 됐다. 이로써 이 집안은 ’90년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 받은 장남 이윤호선생을 포함 3부자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정부에서 포상을 받았다. ▲ 이외에 1919년 국내와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수립의 주요인물로 1920년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을 전개한 故 洪濤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게 되었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선생의 모친 吳信道(1857~1933)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