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99주년 기념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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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1-13작성자 관리자조회수 483 |
◈ 26일(일) 오전 10시, 남산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열려 ◈ 중국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저격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安重根의사 의거 99주년 기념식』이 26일(일) 오전 10시, 남산에 있는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안응모)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승병일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장, 광복회원,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호일 안중근기념관장의 약전봉독 및 이영옥 이사의 의거의 이유봉독, 광복회장과 국가보훈처 차장의 기념사에 이어 작곡가 안용희씨의 기념연주(봉숭아/선구자), 글짓기대회 수상자 시상,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의 안중근노래 합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安重根의사(1878~1910)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1906년도에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삼흥(三興)·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헌신하였다. 또한 일제의 강권에 의해 광무황제가 폐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해외로 나가 이범윤·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1908년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회령 등지에서 항일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다시 노령의 블라디보스톡·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강구하였고, 1909년 봄에는 김기열(金基烈)·백낙길(白樂吉)·우덕순(禹德淳)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1909년 9월 노령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으며, 의거 당일(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던 이등박문(伊藤博文)을 권총으로 저격하여 주살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위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