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3·1운동 90돌 맞아 만주지역 독립군 故 장기초 선생 등 순국선열·애국지사 119명 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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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4-07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159 |
◈ 건국훈장 72명, 건국포장 16명, 대통령표창 31명 ◈ ◈「전문사료발굴·분석단」, 91명 발굴 포상 ◈ □ 국가보훈처는 3·1운동 90돌을 맞아 일제에 항거하여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장기초 선생을 비롯해 전주 기전여학교 재학 중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인애 선생과 기생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주순이 선생 등 119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72명(독립장 1, 애국장 43, 애족장 28), 건국포장 16명, 대통령 표창 31명으로 생존자는 없고 여성 2명이 포함되어 있다. □ 포상은 제9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되며, 해외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유족에게 전수된다. □ 포상자 119명 중 76%에 이르는 91명은 활동 당시의 판결문, 각 읍·면·동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는 수형인 명부, 일제의 정보 보고서, 그리고 신문보도 기사 등의 관련 자료를 수집 검토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행적을 확인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발굴하여 포상하게 됐다. □ 이번 제90주년 3·1절 계기 포상은 역사학 전공자로 구성된 국가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대상 472건에 대해 관련 자료를 수집, 분석, 보완하고 사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위원회의 3개 분과위원회와 제2심사위원회의 심도 있는 심사를 거쳐 포상자를 결정했다. - 특히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은 국내에 있는 판결문, 수형인명부 등의 행형자료, 중국의 당안자료인 「토죄봉성집안현관공리문(討罪奉省輯安縣官公吏文)」, 대만에서 수집한 「일병입경혼춘현경내피해간민휼금핵정서(日兵入境琿春縣境內被害墾民卹金核定書)」 등의 해외자료, 『독립신문』과 『매일신보』를 비롯한 신문자료 등 국내외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장기초 선생은 종래 발굴되지 않았던 판결문 등을 수집하여 구체적인 활동내용과 옥고기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독립장에 서훈되었다. 또한 애국장에 서훈된 현성희 선생 등 24명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보상금을 노린 중국 관헌에 체포된 후 피살되었거나, 일본 관헌에 인도된 후 피살된 분들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 수집한 중국 당안인「討罪奉省輯安縣官公吏文」을 철저히 분석하여 순국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서훈된 경우이다. 그 외에 전성규·김재호·옥부윤·승광우 선생 등은 압록강 일대에서 『흥업단원(興業團員)』으로 활동하다 중국 마적단에게 체포되어 피살된 분들로 당시의 신문인『진단주보(震壇週報)』에서 순국사실을 확인하여 애국장에 서훈하게 되었다. - 또한, 이번 발굴포상자 91명 중에는 판결문 등의 공적 입증자료를 통해 독립운동가를 발굴한 후 다시 읍·면·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 주민등록등본 등을 역 추적하여 34명의 후손을 찾아 포상함으로써 보훈행정의 신뢰를 제고케 하였고, 독립유공자의 명예선양과 후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건국훈장 8,727명(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798, 애국장 3,472, 애족장 4,334), 건국포장 779명, 대통령표창 2,012명으로 모두 11,518명이고, 이중 외국인 포상자도 45명이 포함되어 있다. □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의 역량을 강화하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과 협조 하에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이번에 포상을 받는 분 중 주요 훈격에 서훈된 분들의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만주지역의 독립군 - 故 장기초 선생 - 건국훈장 독립장에 서훈된 장기초(張基礎, 1893~미상)선생은 1920, 1930년대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西路軍政署·統義府·參議府·國民府 등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하면서 친일파 처단 및 주재소 습격 등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 특히, 1922년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1924년 참의부 간부로 조선총독 사이토가 압록강 국경지대를 순시할 때 저격계획을 주도했고, 1925~1928년 참의부 군수위원과 행정위원 등을 역임하고, 1928년 참의부 대표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에 헌신했으며, 1929년 국민부 민사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받고 1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 독립군 양성에 헌신 - 故 이동화 선생 -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된 이동화(李東華, 1896~1934)선생은 1920년경 중국 상해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1932년 10월에 중앙집행위원 후보로 활동하였다. -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폭탄제조기술을 습득하여 1932년 중국 남경에서 독립군 양성을 위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군사조 교관으로서, 폭탄제조법 및 폭탄사용법·실탄사격 등의 교육에 앞장서다가 1934년 3월 순국하였다. - 선생에게 교육받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졸업생들은 이후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조선의용대(군) 등에 배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남매 독립유공자의 탄생 - 故 김인애·주순이 선생 - 여성 독립유공자로서 대통령표창에 서훈된 김인애(金仁愛, 1898~1970) 선생은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 등으로 활동하여 1980년 독립장에 서훈된 김인전 선생의 여동생으로서, 1919년 전북 전주 기전여학교 학생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또한 대통령표창에 서훈된 주순이(朱順伊, 1900~1975) 선생은 2002년 애족장에 서훈된 주병오 선생의 여동생으로서, 1927년 경남 통영에서 기생의 신분으로 오빠와 함께 반민족 행위자를 성토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