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주년 3·1절 故 강영소 선생 등 순국선열 · 애국지사 176명 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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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3-15작성자 관리자조회수 2,344 |
◆ 건국훈장 120명, 건국포장 27명, 대통령표창 29명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오는 3월 1일 제92주년 3·1절을 맞아 미주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 등으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강영소 선생을 비롯하여 176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20명(독립장 2, 애국장 55, 애족장 63), 건국포장 27명, 대통령표창 29명으로서 이 가운데 여성은 1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92주년 3·1절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전수된다. ▣ 총 176명의 포상자 가운데 97%에 달하는 171명은 국가보훈처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행형기록 및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아 분석·검토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동일인 여부와 활동 전후의 행적을 확인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발굴하여 포상하게 되었다. 발굴 포상자 171명 가운데 23명은 판결문 등 입증자료를 통해 공적내용을 발굴한 후 다시 읍·면·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역 추적하여 후손을 찾아 포상함으로써 후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사 등 역사학 전공자를 주축으로 2005년에 발족한 국가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은 그 동안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신분장지문원지, 가출옥에 관한 서류, 판결문 등의 국내 사료는 물론 중국 자료,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 등에 산재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국내와 중국 관내 및 만주, 노령, 일본,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다수 발굴·포상하여 왔다. 특히 이번 3·1절에는 『신한민보』와 최근에 간행된 『미주국민회자료집』(2005) 등에서 미주지역에서 활동한 열 한분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여 포상하였다. 강영소(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을 비롯, 이살음(건국훈장 애국장), 박원걸(건국훈장 애국장), 남궁염(건국훈장 애족장), 신형호(건국훈장 애족장), 장인명(건국훈장 애족장), 이범녕(건국포장), 백운택(건국포장), 최용진(건국포장), 김홍기(건국포장), 방사겸(건국포장) 선생 등이 영예의 주인공이다. ▣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809, 애국장 3,742, 애족장 4,627, 건국포장 896, 대통령표창 2,246명 등 총 12,443명에 이른다. ▣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과 기존의 사료 수집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외 소장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원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여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금년도 제92주년 3·1절 포상자 가운데 주요 인물의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자 강영소 선생 미주 이민 직후인 1905년 5월 하와이에서 에와 친목회 결성에 참여한 이래 1909년 1월 미주지역의 통일된 독립운동 단체로 국민회(國民會)를 결성하고 1913년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으며, 1916년과 1920년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 1922년부터 1931년까지 신한민보 편집장과 시카고 대한인공동회 재무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의연금을 제공한 강영소(姜永韶)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신한민보」와 「미주국민회자료집」등에서 활동 내용과 독립운동 의연금 제공 사실 등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의병에서 출발, 노령과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유상돈 선생 1909년 평북 철산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고 벽동에서 일인 관리를 처단했다가 체포되어 투옥 중 탈옥한 뒤 노령으로 건너가 1915년 이르쿠츠크에서 항일결사 ‘21형제’에 가담하고, 1918년 북만주 목릉에서 일본군 출병에 대응해 무장세력을 결집시키고 이듬해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동맹단 의사원으로, 1924년 9월 목릉소재 동양혁명대의단 집행부장으로 활약한 유상돈(劉尙敦)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선생의 투쟁은 대한제국 시기의 항일 의병이 일제하 만주·노령의 항일무장투쟁으로 계승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유지로 김화지역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된 진홍거 선생 1928년경 강원도 김화에서 김중산(金中山) 등과 함께 조선공화정치국(朝鮮共和政治局)에 가입해 재무과장으로 독립운동 자금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한 진홍거(陳鴻巨)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유지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함으로써 김화지역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른바 제2차 안동의진의 실질적인 지도자 권재호 선생 1896년 음력 1월 제2차 안동의진으로 알려진 김도화(金道和) 의진 의 중군장(中軍將)으로 호좌의진(서상렬 의진)의 안동지역 주둔에 협력하고 경북 예천에서 개최된 회맹(會盟)에 안동의진의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부하의병 250명을 이끌고 제2차 태봉(胎封) 전투에 참가한 권재호(權載昊)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국가보훈처가 간행한 「한말의병일기」(2003)에서 활동내용이 보완되고 제적부와 족보에서 인적사항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의 열 번째 독립유공자 강호석 선생 1919년 가을 중국 안도현 내도산에 성준용 등과 함께 독립군 병영지를 물색하고, 1924년 8월 반석현에서 열린 한족노동당 창립대회 발기인, 1926년 10월 동 검사위원으로 선임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한 강호석(姜好錫)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 1962년 독립장) 선생의 사위이다. 이로써 이상룡 선생 가문은 기왕에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이광민(李光民: 1990 독립장), 이병화(李炳華: 1990 독립장), 이봉희(李鳳羲: 1900 독립장), 이상동(李相東: 1990 애족장), 이승화(李承和: 1990 애족장), 이운형(李運衡: 1990 애족장), 이준형(李濬衡: 1990 애국장), 이형국(李衡國: 1990 애족장) 선생을 포함 총 10분에 달하여 독립운동의 명가로서 영예를 드높이게 되었다. 광주에서 간호사로 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 치른 김안순 선생 1919년 3월 10일 간호사로서 전남 광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어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김안순(金安淳) 선생에게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그동안 선생에 대한 포상은 관련 자료상 성명이 김안순, 김유운으로 상이하여 보류되었으나, 두 차례에 걸쳐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경찰청에 ‘김안순’의 지문과 ‘김유운’의 지문 일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의뢰, 동일인임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