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尹奉吉) 의사 순국 72주기 추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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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736 |
◈ 19일(日) 오전 11시 효창공원 윤봉길의사 묘전에서 ◈ ◈ 각계인사, 광복회원 등 150여명 참석, 윤의사의 뜻 기려 ◈ 상해 의거를 통해 한국독립운동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梅軒 尹奉吉의사 순국 72주기 추모식이 19일(日) 오전 11시에 효창공원 윤의사 묘전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덕룡)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황인환 서울지방보훈청장, 김국주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이흥종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장, 권이혁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장 등 독립운동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달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식사(式辭), 황인환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윤봉길 의사(1908.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키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였으나,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장에서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약소국가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제 군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고 그해 5월 25일 상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