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선생 75주기 추모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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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271 |
◈ 9일(月) 오후 3시 능동 어린이대공원내 동상 앞에서 ◈ ◈ 남강문화재단, 오산중·고등학교 교직원·학생 등 100여명 참석 ◈ 3·1독립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치신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 「남강 이승훈선생 75주기 추모예배」가 9일(月) 오후 3시 능동 어린이 대공원 내 이승훈선생 동상 앞에서 남강문화재단(이사장 김재율)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오산중·고등학교 학생 및 교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용관 교목 사회로 묵도, 찬송, 기도, 축도 순으로 진행되며, 추모예배 후에는 장래성 오산고등학교 교장의 “남강 선생의 생애”에 주제로 학생들에 대한 강연이 이어진다. 남강 이승훈 선생(1864.3.25~1930.5.9)은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하여 1907년 평양에서 안창호의 강연에 감동하여 강명의숙(講明義塾)이라는 소학교를 세우고 교육재단을 만들어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건립하였다. 또한, 1919년 3월 1일에는 기독교측 대표로서 손병희 선생 등과 독립선언서를 회람한 후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7월 가출옥으로 출감하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내려온 선생은 오산학교를 정비한 후, 1924년에는 1년간 동아일보 사장에 재임하였으며, 1925년에는 오산학교의 재단법인을 완성하고 이사장에 취임하는 등 오산학교 경영과 농촌부흥 운동 전개에 헌신하였으나, 협심증으로 1930년 5월 9일 6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남강 이승훈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