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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웅치전적비 답사 및 Monitoring.
작성일 2015-08-15작성자 송철효조회수 591

■. 全羅北道 完州郡 所陽面 熊峙戰蹟碑 踏査 및 Monitoring.

 

●. 槪     說.

 

▲. 일   자 : 2015年 08月 15日.  

▲. 장   소 : 全羅北道 完州郡 所陽面 熊峙戰蹟碑 .  

▲. 주   최 : 國家報勳處.  

▲. 주   관 : 國家報勳處 알림이.  

▲. 목   적 : 顯忠施設인 熊峙戰蹟碑 踏査 및 Monitoring.  

▲. 인   원 : 1名. 

▲. 날   씨 : 맑음.  

▲. 사   진 : 添附.  

▲. 작   성 : 國家報勳處 알림이.

 

●. 槪     要.

 

2015年 08月 15日 오늘은 全羅北道 完州郡 所陽面 新村里에 位置한 壬

辰倭亂 때의 戰迹地로 1976年 04月 02日 全羅北道記念物 第 25號로 指

定된 熊峙戰迹碑를 踏査하였습니다. 1592年(宣祖 25) 壬辰倭亂 때 朝鮮의

官軍과 疑兵이 全羅道로 進出하려던 倭軍을 맞아 治熱한 攻防戰이 벌어졌

던 激戰地로 1979年 政府의 支援을 받아 熊峙戰蹟碑를 세웠습니다. 忠淸

南道 금산(錦山)에 駐屯하고 있던 倭軍이 2鎭으로 나뉘어 全州를 攻略하

자 光州牧使 권율(權慄)이 梨峙(배티재)에서 敵의 1鎭을 맞아 擊破하고 金

提郡守 정담(鄭湛)·海南縣監 변응정(邊應井)·羅州判官 이복남(李福南)이 이

끄는 義兵은 熊峙에서 敵의 2鎭을 맞아 擊破하였으나 다음날 새벽 倭軍은

戰列을 가다듬고 다시 攻擊해옴으로써 熊峙 守備는 무너졌습니다. 
 

 

●. 內     容. 
 


▲. 명    칭 : 熊峙戰蹟碑. 

▲. 대    상 : 熊峙戰蹟地에서 싸우다 戰死하신 愛國先烈의 靈魂. 

▲. 위    치 : 全北 完州郡 所陽面 新村里 熊峙戰蹟地. 

▲. 관    리 : 完州郡 郡守.  

▲. 번    호 : 全羅北道 記念物 第 25號. 

▲. 주    체 : 全羅北道 完州郡.  

▲. 활    동 : 顯忠施設 踏査 및 Monitoring. 

▲. 건    립 : 1979年에 세운 熊峙戰蹟碑.  

▲. 규    모 : UNK.

▲. 면    적 : UNK.

▲. 사    진 : 添附.  

▲. 행    사 : 熊峙大戰 殉國英靈 追慕祭 行事(陰曆 10月 10日).


 
●. 目      的.


全羅北道 熊峙戰蹟地에서 戰死하신 분들의 넋을 달래는 全羅北道

記念物 第 25號로 指定, 熊峙戰蹟地에서 緣故 없이 戰死하신 이들의

넋을 기리고 後孫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愛國精神을

涵養하기 위함.



●. 趣     旨.

 

全羅道 地方은 當時 朝鮮의 重要한 穀倉地帶 中 하나였고 倭軍은 싸움에

數 要素인 軍糧을 安定的으로 供給받기 위해서라도 全羅道 地方을 手中에

넣어야 했지만 失敗로 돌아갔고 唯一하게 무너지지 않은 全州城을 있게

한 歷史 中에 바로 웅치(熊峙, 곰티) 戰鬪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當時 全

羅道 攻略 責任者인 倭軍將帥 안고쿠지 에케이(安國寺惠瓊)가 指揮하는

倭軍은 鎭安을 거쳐 熊峙를 넘어 全州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이에 全州城

을 지키기 위해 前進 配置된 義兵長 황박(黃璞)이 1鎭으로 先鋒에 서고

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이 2鎭을 맡았으며 金堤郡守 정담(鄭湛)과 海南縣

監 변응정(邊應井)이 3鎭에 配置되어 侵攻해 오는 日本軍을 맞아 熊峙의

地形을 利用해 敵을 擊破하기 위한 鎭을 쳤으며 1592年(宣祖 25) 07月

07日 數千 敵軍을 맞아 첫날 奮戰 끝에 擊退했습니다. 다음날인 08日 아

침 倭軍은 全 兵力과 화력(火力)을 動員한 全面攻擊을 해와 白兵戰이 全

開되었습니다. 朝鮮軍은 第1線 제2線이 무너지고 마지막 제3線도 鄭湛의

戰死로 무너졌으며 싸움이 끝난 뒤 倭軍은 朝鮮軍의 忠誠心과 勇猛性에

깊이 歎服해 屍體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표목(標木)을 세우고 朝鮮의

忠臣 義士들의 靈魂을 조상하노라(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써 놓았다고 합

니다. 倭軍은 싸움의 勝利로 全州로 들어갈 길을 뚫었으나 朝鮮軍의 氣槪

에 눌려 全州城 밖에 머물다가 城을 攻擊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합니다.

湖南의 穀倉을 蹂躪하려던 倭軍을 熊峙戰鬪의 防禦와 理致戰鬪에서 勝戰

함으로써 全州城이 安全하게 되었고 丁酉再亂(1597)이 있기까지 07年 동

안 軍糧米 補給과 兵力補充에 크게 貢獻할 수 있었으며 每年 陰曆 10月

10日에는 이곳 熊峙戰蹟地에서 緣故 없이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는 날로

隣近 마을 住民들이 直接 나서 追慕祭를 지내고 있습니다.  


  

●. 所     感.


 

熊峙戰鬪에서 護國의 一念으로 最後의 瞬間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先烈들

을 결코 잊지 말고 名譽로 지켜드리는 일에 精誠을 다해야 한다며 先烈들

의 靈前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며 熊峙大戰은 壬辰倭亂 當時 官軍과 疑兵

地域의 뜻있는 이들이 參與한 治熱한 戰鬪로서 湖南 防禦에 決定的인 契

機가 된 戰爭입니다. 日本에서조차 熊峙戰鬪는 單純히 全羅道를 지킨 戰

鬪를 넘어 朝鮮을 求한 戰鬪라고 評價하는 等 只今도 熊峙戰鬪의 重要性

과 意義는 매우 큰 것으로 評價받고 있으며 完州郡에서는 壬辰倭亂 동안

湖南地域의 義兵과 官軍의 발자취를 再照明하고 歷史文化資源을 活用하는

次元에서 熊峙戰蹟碑 聖域化 事業을 위한 學術調査와 Symposium을 實施

하여 完州郡은 熊峙戰蹟碑 聖域化를 위한 發掘調査를하고 住民 自體的으

로 熊峙大戰 殉國英靈 追慕祭全委員會를 構成하여 祖國을 위해 목숨을 바

친 先賢들의 넋을 기리고 後孫들의 愛國精神 涵養을 위해 計劃的인 踏査

를 勸誘합니다.


●. 揭    載.


1. 國家報勳處 열린마당 參與寫眞.

2. 國家報勳處 열린마당 自由揭示板.

3. 國家報勳處 顯忠施設 統合情報 알림이.

4. 大韓民國 傷痍軍警會 Community 自由揭示板.

5. 大韓民國 武功受勳者會 全北支會 Cafe Album.

6. 國務總理 秘書室 국민마당 自由揭示板.

7. 國防部 國防政策 나도 한마디.

8. Cafe Log-In.

(1). 全羅北道 電子民願 Monitor 自由揭示房.

(2). 옛 그늘 文化遺産 踏査會 自由揭示板.

(3). Pride 여산 여산인 自由揭示板.

(4). 黃昏의 樂園 自由揭示板.     

(5).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 自由揭示板.         

(6). 空軍 戰 公傷 有功者會 우리들의 이야기 

(7). 정 사랑주고 自由揭示房.

(8). 반딧불 아무거나.

(9). 全州市 在鄕軍人會.

(10). E-Mail 12곳.



●. 2015年 08月 15日. 國家報勳處 알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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