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누구로부터 받는 일보다도
누구에겐가 주는 일이 훨씬 더
좋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주는 일보다
받는 일이 훨씬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
것은 탐욕이고
인색이다.
그리고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빚이고 짐이다.
세상살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는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 같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을 일몰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 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 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것이 출세간의 청백가풍淸白家風이다.
-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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