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승기념비 답사 및 Monitor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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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21작성자 송철효조회수 334 |
■. 대한민국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승기념비 답사 및 Monitoring. ●. 개 설. ▲. 일 자 : 2015년 12월 17일. ▲. 장 소 : 전라북도 군산시 금동 38-03(월명공원). ▲. 명 칭 :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전적 비. ▲. 건 립 : 1990년 12월 01일. ▲. 주 최 : 대한민국 해병대. ▲. 주 관 : 국가보훈처 알림이. ▲. 활 동 :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전적 비 답사 및 Monitoring. ▲. 인 원 : 1명. ▲. 날 씨 : 맑음. ▲. 작 성 : 국가보훈처 알림이. ●. 개 요. ▲. 2015년 12월 17일 오늘은 전라북도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의 개전 초기인 1950년 07월 14일 해병대 작전명령 제1호에 의거 해병대 가 북한군 6사단의 호남지역 남침을 지연하기 위해 투입된 전투로 6·25전쟁 기간 중 해병대가 참가한 최초의 전투이자 해병대 신화의 출 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는 해병 1 기, 2기생을 주축으로 대대규모의 부대를 편성하여 고길훈 소령을 부 대장으로 하여 전투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 이 명령은 해병대 작전명령 제1호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 내용 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적의 진출을 지연하라는 임무를 받은 해병대 고길훈 부대는 07월 15일부터 20일까지 성공적으로 북한군 13연대의 호남지역 진출을 저지하였으며, 호남지역 주요 물자를 안전하게 반출 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방어와 기습공격 등의 전술을 구사 하며 지연작전을 수행하여 북한군의 예봉을 꺾은 고길훈 부대는 적 사 상 356명, 포로 5명이라는 전과를 올렸지만, 68명의 용맹한 해병전사 들이 전사하거나 전상을 입는 아픔도 낳았습니다.
●. 내 용. ▲. 6.25전쟁 동안 해병대가 수행했던 최초 전투이자, 최초 승전보를 울리며 상승불패 신화의 밑거름이 된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 전승 을 이루었습니다. 기름진 땅과 풍부한 바다 진포 대첩의 역사적 현장 인 군산 진포대첩 고려 무왕 때 금강 하구에서 침공하는 왜군과의 해 상 전투, 이 때 우리 군함은 100 여척이었으나 최무선의 화포로 적의 500 여척을 섬멸한 전쟁을 말합니다. 이제 군산은 새만금 사업의 완공 으로 살고 싶은 도시, 다시 오고 싶은 도시, 투자하고 싶은 도시로 변 모해 가고 있으며, 드림 허브(Dream Hub)도시인 군산에 아름다운 공 원인 월명 공원입니다. ▲. 군산공원, 해망공원으로 불리었던 월명공원, 차가운 해풍을 막아주 고 새롭게 조성된 일천만평의 공단에서 불어오는 유해한 공기를 걸러 내는 허파 구실을 하는 월명산, 30만 인구 새만금지구가 활성화 되면 서 50만 웅비의 도시로 힘찬 도약을 하고 있습니다. 등록 문화재 1호 는 내진(耐震)설계가 된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 사옥입니다. 이제 신흥동에 있는 일본 건물인 히로쓰(廣津) 게이사브로 가옥으로 히로쓰는 임피에서 농장을, 군산에서는 포목상을 한 부(富)를 축적한 인물입니다. 목조 2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무가(武家)의 고급 주택으 로 장군의 아들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 일제 식민 수탈의 근 거지로 되어버린 군산, 그 흔적의 산물이 건물입니다. 타오르는 불길과 바람에 나부끼는 돛의 형상을 그린 수시 탑은 군산시의 상징입니다. ●. 결 론. ▲. 대한민국 해병대 전승 기념비, 삼일운동 기념비, 생각하는 시민 상 도 있지만 채만식 문인 비, 향토에서 의술을 펼친 이 영춘 박사와 애 국지사이신 이 인식 선생의 동상, 일제 강점기 때 기자생활을 하면서 소설로 부패한 사회를 고발한 채만식 선생, 향토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워 농어촌 위생 사업과 교육 사업에 헌신한 이영춘 박사, 해방 전에 는 독립운동을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에 헌신한 이 인식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귀감이 될 분입니다. ▲. 바닷가인 해망동 방향으로 내려오는 해망 굴은 군산시내에서 바닷 가로 이어지는 131m의 터널로 통행이 빈번한 교통로입니다. 6.25때 북한군의 지휘본부로 이용되었던 곳입니다. 창설된 지 불과 1년이 지 난 해병대는 서남부 측방을 향한 북한군의 남침을 1주일간 지연시키며 군의 식량 반출작전과 방어진지 구축을 성공적으로 보장하였고 열악한 장비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적의 예봉을 꺾음으로써 악화일로의 전황 속에서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가 최초로 참가하여 승리를 거둔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의 역사를기념하고 호국의지를 계승하기 위한 민·관·군 화합의 장 이 만들어 졌습니다. 한편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50.7.15∼7.21)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가 최초로 참가한 전투로 1950년 07월초 천안을 점령한 북괴군 제13연대가 호남지역으로 남하할 때, 해병대 고길훈 부 대가 07월 16일 군산에 상륙, 북괴의 금강 진출을 저지·격파하고 07월 20일까지 남침을 저지한 전투로 무적해병이라는 해병대 신화가 된 매 우 중요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사 진 :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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