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찾기 구호만 요란스럽게 해서는 절대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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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3-21작성자 정병기조회수 1,999 |
국가보훈처에서 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구호만 요란스럽게 해서는 절대로 안돼
관련 호적 (제적등본) 내용 살펴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가족 발굴해야 바람직
국가보훈처는 찾는 노력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짐 떠넘기는 형상 언제까지 하려나...
가족들이 제출하는 관련 서류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묵살 하는것 같아 안타깝다.
제부모 제조상 같으면 이렇게 하려나 싶은 심정이다.
앞으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고 정용선 증조부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지금까지 30 여년째 증손자가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발 귀를 기울려 주셨으면 합니다.남의 일로만 생각지 마시고 관심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랍니다.
저는 저의 증조부(고 정용선)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발굴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20여년을 노력해 왔습니다만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정호적원부에 수형기록과 사망기록이 있슴에도 판결문을 찿지 못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친은 문맹인으로 살고 계시며 평생 어렵게 할아버지도 일찍 일제피박에 돌아 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로 어렵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신 분이십니다.
이미 저의 증보부자료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에 제출한지 오래이며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으로 인하여 경성형무소가 소실되고 지방에 본적지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더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각하의 따뜻한 관심이 애타게 조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후손들에게 큰힘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자료는 국가보훈처 자료관리과 또는 선양과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시혜적 보훈정책 구조적 원인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가난 대물림과 배움기회 박탈, 또 계층 하락은 거꾸로 간 역사의 구조적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 차원이 아닌 시혜 차원에서 도입된 보훈정책도 가난·무지의 대물림을 고착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가 증조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여 왔으며 외교통상부장관님께 협조를 요청하며 드린 글입니다.
*증조부(정용선)의 호적 주소는
성명:정용선 차명:정 차용 정 재열 등 다수의 이름으로도 불렸다고함
출생년월일:서기1883년12월17일생(명치16년12월17일생)
본젹지: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391번지
거주지:대정3년 충청북도 청주군 양성면 도원리3통1호
대정4년 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7통10호
경북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1062번지
전국을 무대로 독립운동(독립자금 군자금)을 담당 하였다고 함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소 통지하여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꼭 저의 증조부에 대한 기록을 찿을 수 있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모든것을 정부가 마땅히 해야 옳은것 같은데 가족에게만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일본인이 작성한 제정호적에 수형기록이나 옥사기록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호적을 검토하여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이번에"민족문제연구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꼭 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친일문제가 청산되고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현재 그동안 찿은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증손자 정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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