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세대가 겪어온 인생역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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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6-05작성자 우종희조회수 2,484 |
우리세대가 겪어온 인생역경
우리세대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압박과 식민정책으로 나라를 잃은 우리민족들은 성씨마저 잃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겪어왔다. 그런 와중에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에 따라 우리나라가 8.15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침략에 만족치 않고 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을 일으켜 전 동양을 차지하려는 침략전쟁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1941년)을 일으켜 미국(연합군)과 싸우다1945.8.6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1945.8.9 나가사끼(長崎)에 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1945.8.15 무조건 항복을 하였으며 아울러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이다. 만일에 미국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영원이 일본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1945.8.15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날인 동시에 우리나라가 해방된 날이었다. 8.15해방은 우리에게 곧 독립까지는 가져다주지는 안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이북은 소련군대가 진주하고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여 각각 군정을 다스리기도 했다.
한반도는 두 세력의 대립으로 인하여 화해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국토와 민족의 사상이 둘로 갈라져 대립하게 되었다. 남한의 민주진영은 UN의 협조를 얻어 전 국민의 자유의사대로 남북을 통합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주권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반대하였다. 이에 UN은 1948. 2월 가능한 지역부터 선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948.5.10. UN감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남한에서 역사적인 총선거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국회가 소집되고 헌법이 제정되어 초대대통령으로서 이승만박사가 취임하여 1948.8.15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발족한 대한민국은 1948.12월에 파리에서 열린 UN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
세계2차대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세력다툼확장 또는 영향력 확대정책에 파급되었다. 세계의 냉전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이 확장되면서 한반도에도 두 개의 이념체제로 분단되어 남쪽은 대한민국, 북쪽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분단국가가 등장했다.
남한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자본주의국가였고 북한은 소련의 후원을 받는 공산주의국가였다.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통일의 움직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쌍방에서 진행된 한민족들의 통일운동은 이념갈등의 직면과 세계냉전과의 중첩의 측면에서 1948년 이후 남한과 북한의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하게 심화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 김일성공산당은 소련 스타린을 수차 방문하여 북한의 주체성과 남침제안을 승인받고 지원약속과, 중공 모택동과의 공모와 지원으로 김일성이 주도한 무력적으로 1950.6.25 남침적화통일전쟁을 도발해왔다.
김일성은 적화통일과 남침야욕에 군비확장과 전쟁준비에 몰두해왔는데 비해 남한에서는 당파싸움과 권력쟁취 등 안이한 태도로 방심하고 있는 사이 불의에 침공을 당하고보니 속수무책이었다. 6.28일 새벽 3일 만에 수도서울이 함락되고 피난민행렬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북한공산군은 탱크와 대포 등 중무장으로 노도와 같이 침공 해 왔으나 아군은 그에 비교도 안 되는 열약한 군비로 대전하다보니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면서 수도서울이 함락되고 수원이 함락되었다. 그리고 7.5일 급기야 미군 1개대대 선두부대가 오산북방 죽령에서 참전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 UN군의 지상군이 투입되어 참전했으나 전세는 불리했다. 아군은 파죽지세로 밀어닥치는 공산군에게 패배되어 대전이 함락되고 대구마저 위기에 처해있었다. 서부전선은 광주, 목포 그리고 마산까지 함락되고, 동부전선은 포항까지 함락되었다. 대구마저 공산군에게 함락된다면 부산까지는 순식간에 함락될 것이며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우리국군들은 사력을 다하여 불굴의 항전을 거듭하면서 싸웠다. 아군은 위기일발의 대구북방 낙동강방어선과 서쪽 창녕, 마산 그리고 동쪽으로 영천, 안강, 구룡포에 이르는 방어진을 구축하고 적의 집중공세를 격퇴하여 사수해 왔으며, 전사(戰史)상 최대의 격전지로서 피아간 희생자도 수없이 발생했다.
이러한 격전 중에 50.9.15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UN군과 한국군은 반격에 나섰다. 급기야 공산군이 퇴각되고 아군은 진격하여 9.28일 수도서울을 수복했다. 그리고 10.1일 38선을 넘어 진격하여 10.20일 평양을 점령했다. 그리고 선두부대 한국군 6사단 7연대 수색소대가 10.26일 오후2시경 평안북도 초산을 지나 압록강변 언덕에 태극기를 꽂아 세웠다. 아군이 압록강가까이 진격하여 북진통일의 과업이 눈앞에 다가왔으나 중국만주에서 대기 중이던 중공군이 개입 반격에 나섰다. 북한공산군이 패주하여 위기상황에 이르자 중공군이 50.10.19 압록강을 넘어 참전하게 되었다. 중공군 30만명의 병력이 투입 11.1일부터 본격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인해전술로 반격해오자 전세는 다시 악화되어 51.1.4 서울이 다시 함락되고 1.4후퇴가 이루어 졌다.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서 미․중 전쟁의 체제가 되었다. 북한군은 중공군사령관의 지휘하에 들어갔고, 한국군은 UN사령관인 미군사령관 지휘하에 있었다. 50.1.25 맥아더장군은 중국의 예안(만주)지역과 내륙지방에 대한 폭격을 주장하는 위협적인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 트루먼대통령은 반대하였다. 3차 세계대전으로 전개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후 51.4.11 트루먼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을 해임시키고 후임에 리지웨이장군이 임명되었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UN의 많은 나라들도 휴전을 제안했다. 그리고 남침전쟁을 사주한 소련도 미국에 대하여 휴전을 제안함에 따라 휴전협정조인이 이루지고 개전 3년 1개원 만에 휴전이 되었다.(53.7.27) 휴전이 되었으나 아직도 DMZ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휴전이후 작금에 이르기까지 북한공산당은 온갖 만행을 도발해 왔으며 핵개발 등으로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6.25북한공산당남침전쟁의 위기상황에서 우리국군들은 사력을 다하여 항전분투 했으며, 미군을 비롯하여 참전UN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3년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戰禍)는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인명손실도 600만명이라 한다. 폐허 속에서 우리세대들(6.25전쟁 세대, 산업화 세대)은 전후(戰後) 재기의 역경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산업역군으로써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전후 국민소득이 87달러였으나 근간에 3만달러 시대로 경제선진대열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난과 보릿고개시대에 일제압박과 8.15해방, 그리고 6.25전쟁 등 파란만장한 격변기를 살아온 우리들은 지금은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자위(自慰)하고 싶다. 우리마음속에는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박정희 경제대통령의 위업(偉業)을 잊을 수 없다. 해방직후 세계정세에서 이승만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건국할 수 없었으며, 6.25전쟁에서 나라를 보전(保全)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박정희대통령은 가난에서 벗어나 산업 혁명으로 경제발전을 일으켜 선진국대열에 섰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건국을 부정하고 갈등과 분열, 증오와 대립을 조장하는 일부 좌파세력과 종북세력들이 우리사회 각 계층에 침투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차기 정권을 노리고 사사건건 부정하고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바이다. 이들을 배척하는 것만이 자유대한민국의 발전과 존속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황혼을 맞이한 우리세대들은 비참했던 과거는 추억일 뿐, 심신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남은여생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리에 따라 좀 늙었을 뿐, 산이 부르면 산에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가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 건강하게 남은여생 후회 없이 즐겁게 살다 가는 것이 소망일 것이다. 황혼의 인생 기약 없는 황천길에 오늘도 어김없이 흘러만 간다.
2016. 6. 5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노생(老生) 백마(白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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