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무덤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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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6-07작성자 손택수조회수 535 |
"희미한 광솔불 아래 남편의 등뒤에 앉은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바늘끝에
실을 감아 먹물을 적셔 위옷을 벗은 남편의 등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내일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이 만약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많은 시체들 중에서 남편의 시체를 찾기위해 등에 표시를 하는 것이다
또한 결혼하지못한 자식은 그어머니가 그와같은 바늘로 등에 표시를 하며 부디 살아만 달라고 기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나 어머니는 바늘로 등을 찌를 때마다 흐르는 피를 속치마에 믇히고
있었으니 혹시 등에 표시를 했어도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여 시체를 찾지못한다면 시체대신 그 피묻은 치마를 묻고 무덤을 만드니 이것이 "치마무덤"이라는것이다
죽음을 앞세우고 전쟁터로 나가는 남편이나 자식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아내나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찟어질듣 아팟을 것이며 그 밤이 왜그리 짧기만 한지 새벽닭이 우는소리가 너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한스럽기만 했을것이다
우리 민족이 생겨난 이래 멀리 삼한시대부터 삼곡시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의 비극은 얼마나 많았으며, 얼마전 방영된 연속극"왕건"에서 보았듯,
그많은 죽음의 병사들을 찾아 헤매던 아내와 가족들의 비통함이 얼마나 컷으며 그럴적마
그많은 전사한 남편이나 자식의 시신조차 찾지못한 가족들이 만든 많은 치마무덤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가 생긴 이래 900여회의 외침을 당했다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한맺힌 치마무덤이 만들어젔을까?
우리대한민국이 건국된이후 우리는 현충일(顯忠日)이라는 추념(追念)일을 제정하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이ㅆ다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몽고의 침입,임진왜란, 병자호란,일제시대의 독립운동,6.25전쟁,
월남전쟁,대간첩작전등 고달푼 역사의 고비가 있을때마다 슬기롭게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위한 날을 하루잡았으미
이날이 6월6일 현충일이다
현충일 제정은 6.25전쟁이 끝난후, 1956년에 정해젔는데 현충일이 6월6일로 정해진 제정의 의미는
고려 현종때부터 전쟁터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일년 24절기중 망종(芒種)일을 택해 지냈으며,
또 망종일을 택해 전사한 장병의 유골을 고향에 보내 재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24절기중 망종(芒種)일이 일년중 6월6일이 됨으로 이날을 현충일로 제정하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추념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 익산보훈지청 최명환 지청장의 글중에서 -
오늘 새삼스럽게 익산보훈지청 최명환지청장의 글을 인용하며 올리는 것은
현충일날 아침에 일어나 조기(弔旗)를 달려고 나와보니
내가 날짜를 잘못알았나? 할정도로 조기를 단집이 한집도 안보여
옆골목을 돌아가니 겨우 한집이 조기를 달앗다
그집을 가만이 가서보니 그집은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집이었다
이제는 조기다는것조차 귀찮아젔는지..
아님 조기가 뭔지 현충일에 의미도 아예생각조차 없는것은 아닌지..
무관심한 세상이 원망스럽다
현충탐앞에서 충주시가 주관하는 추념식에 참석하여보니 올해따라 상이군경회장이 낭독하는
추모헌시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수가 없다
"초연속에 사라저간 저----거룩한 영령들이시여!
님들이 피흘린 이 조국 산하는 이제
아름다운 번영의 나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영령들이시여 부디 고히 잠드소서!"
37년전 이역만리 타국전선에서 어느고지점령 임무수행중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선명히 떠오름은
이제 나이따라 굳세었든 마음도 약해지고 있음이야!
추모헌시가 끝날즈음 울음을 터트릴 힘조차 없어보이는 미망인의 초라한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하여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래 말로만 추모추모하지말고 올해는 틈내어 현충원이라도 찾아 그놈들의 묘비에 꽃한송이라도
꽃아놓고 와야겠다
다짐을 하면서 추념식에 참석한 일행들과 헤어저 친구한명을 데리고
근처 장미산성 옛성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한번 의미있는 등산을 해볼까?
2년전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퇴직여행을 동해바다"독도"로 했듯이
오늘 현충일엔 역사의 서글푼 흔적을 찾아 그 현장을 다녀오는것도 의미있을게니까
아마도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곽이 천년세월 풍파에 무너지고 쓰러저
그 형체가 길게 산자락을 감싸고 있다
이곳이 삼국시대 동족간에 서로 죽이고 죽어간 전장터였을테니
혹시 행여 치마무덤이 있을런지도 몰라!
산자락을 빙둘러 약2킬로미터가랑 이제는 무너진 돌무더기 성터를 미련스럽게 쫓아 가시덤불에 팔뚝을 찟기면서도 헤메며 올라갓다
군데 군데 돌무더기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치마를 묻어논 치마무덤일지는 모르는 일이고
아무런 역사지식도 없이 치마무덤 어짜고 저쩌고 하는 내가 한심한거지
그래도 산 정상에서 바라본 시원한 저 눈아래 평화로운 이 산하가
어딘가에 묻혀있을 돌무더기 치마무덤에 영혼들이 지켜낸 값진 유산일게야
그런것만 느낀것도 오늘 산행의 의미는 있는것이지 애써 자위하면서 내려와
석양에 쓸쓸이 나붇기는 아침에 게양한 조기를 걷는 손길이 무거운건
같이 전쟁터에서 임무수행하다가 전사한 놈들 생각이
새록새록 오늘은 더 자꾸 떠오르는게 나도 이젠 나이따라 내마음도 약해지는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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