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를 원망, 통한의 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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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12-05작성자 김철수조회수 953 |
제목 : 국가보훈처를 원망하는 痛恨의 피눈물!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라고 하면서 시작되는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시를 낭독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드리고자 하는 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여년전,
이국 만리 월남땅에서 "따이한"이라는 이름으로 용맹을 떨치면서,
"자유평화를 위하여" 라는 명분으로 ,
또는,
찟어지게 가난한 이 땅의 대한민국에 단 한 푼이라도 보내기 위하여,
당시 혈기 왕성한 젊고 씩씩한 무려 32만 월남참전 선배님들이 그 땅에
국가에 명령으로 가셨고,
그 공헌과 희생으로 이 나라는 가난을 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이 부족하고 물질이 없는 이 가난한 나라에 하나라도 더 보내고자,
황동(신쭈)과 청동(호낑:포금)이 주재료인 탄피든 뭐든 간에,
일명 월남박스 라는 나무상자 속에 가득담아,
절반의 전투수당과 봉급을 고국에 보낸 애국자들이며,
지금의 국가경쟁력 세계 12위 풍요를 가져다 준 장본인들입니다.
그 밖에 2차대전 당시 재래식 무기로 겨우 무장된 한국군 장비들을 모두
현대화 하는 등,
우리 32만 월남참전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월남특수를 계기로 중동특수를 잇는 등.
일일히 모두 열거할 수 없는 경제성장에 초석이 되도록 애국을 한 것을
그 누구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이 나라는 월남참전용사들을 억지로 잊으려 합니다,
아니, 철저히 잊으려고 합니다.
아니죠, 잊혀지는 것도 부족하여 양민학살이니 용병이니 하면서,
그 희생과 공헌을 짓밟더니,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베트남 정부와 외교관계 어쩌구 하면서,
평화유지군으로 포함시켜 32만명 월남참전 이라는 용어자체를 공식화
하여 부정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역사속에서나마 희미하게 존재되는 것마저 허락치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월남 전선에서 산화하신 6천 전사자 영령들은 이름 없는
전선에서 사라진 떠도는 유령들이며, 이역만리 타국 땅 전선에서 고엽제를
뒤집어 써가며, 겨우 살아온 월남참전자들은,
지금까지 이 잘난 이 나라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오다가,
이제는 헌신짝 버리듯 아예 존재 자체를 애써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오늘날 슬픈 현실인 것입니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국제정세 맞게끔,
발빠르게 대응하고 변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국근대화에 초석인 영웅들을 푸대접해도 유분수지,
어찌 배은망덕을 해도 이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
월남참전 선배님들이 전선에서 고엽제 섞인 물을 마시면서,
베트콩과 교전을 벌일때, 당시 이명박씨는 무엇을 했겠습니까?
군대도 빠지고 현대그룹에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정운찬 국무총리!
월남참전 선배님들이 전선에서 하나 둘 쓰러져 6천여 전사자들과 달리,
귀공자처럼 미국 유학길에 떠나 마이애미대 경제학 석사과정 밟고,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과정 밟고 있었잖습니까?
지금의 김 양 국가보훈처장!
월남참전 선배님들이 이국땅 전선에서 하나 둘 부상을 입고,
무려 1만 6천 전상자들이 비명을 지를 때,
행복하게 대만 땅에서 중,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었잖습니까?
군대라는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조차 모르는 청맹과니들인데,
이런 분들이 과연 국가보훈이 무엇인지나 알 것이며,
안다한들 동병상련 심정이 있기나 하고,
더구나, 월남 참전용사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것이며,
그러니 과연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이명박 정부는 지금 4대강 살리기보다 앞서서,
과거 정부가 뺏어간 월남참전 용사 32만 월남참전 전투수당 및 봉급
절반 이상을 착취한 것은 물론,
당시 브라운 대사와 각서 외 미 국방부장관 맥나마라와 한국정부간에
밀약에 의한 5억불 무상차관 및 군현대화를 위한 방위산업 지원금 등,
월남 현지 건설회사를 비롯한 월남 특수에 관련된 지원자금을 낮낮히
공개를 하고,
전사자 및 상이자에 대한 별도 합의된 보상금.
그 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당시 미국 다우 케미칼등 고엽제 제조회사들과
뒷거래를 소상히 밟혀 국책사업의 우선정책으로 전환,
모두 합리적으로 보상하면서,
현재 만 65세 이상자들에 한하여 지급하는 참전수당 8만원이 아닌,
선진국들과 같은 수준인 월남참전 용사들에 대한 정당한 예우와 보상을
해야 할 것이며.
1차 2차 3차 역학조사에 이어 4차 역학 조사 어쩌구 할 것이 아니라,
고엽제 후유로 의심된다는 고엽제 후유의증을,
고엽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국가는 마땅히 모두 고엽제 상이로 인정하여 전상군인으로 예우하고,
정부차원에서 당시 미국의 고엽제 제조업체들에게 재청구를 하여야 하며,
그 것이 불가능하다면, 늦었지만, 국가가 책임을 지고라도 당사자
모두에게 소급하여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며,
작고하신 분들에게는,
미망인 또는 자녀들에게 승계 그 권리와 수급권을 부여함은 물론,
그간에 고엽제 후유의증 수당으로 받았던 것을 전상군인 상이등급을
적절하게 등급을 적용하여 모두 등급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소급적용 환급
보상햐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당장이라도 고엽제 후유증 및 후유의증을 위한 고엽제 연구소 또는
고엽제 전문병원과 고엽제 전문 요양시설을 짓고,
월남참전에 대한 정당성을 되찾아 주어야 하며,
그 빛나는 명예와 자랑스러움을 온 국민들에게 환기 시켜 홍보를 해야
할 것이로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월남 전쟁에 대한 정확한 사고를 각인 시키고,
그 당시 세계적 상황과 공산주의 이념이 존재했던 냉전 상태에서,
자유 수호와 반공이념에 의한 일환에서 대외적 명분으로 파월 되었던
그 시대 역사적 사명도 함께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지금 말입니다......
고엽제 후유증 또는 후유의증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안타깝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말입니다.....
그 미망인들은 평생 병든 남편 병수발만 하다가,
그 좋은 시절과 청춘을 다보내고,
어느덧 나이는 60대를 훌쩍넘겨 다 늙어 70대를 바라보는 초라해진
모습으로 홀로 남겨져,
그나마 생활에 보조수단이 되던 수당 몆십만원 수급권마져도,
남편 사별과 동시 승계가 되지않고 끊겨버려,
더욱 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조차 어려운분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그 미망인분들은,
돌아가신 남편 원망할 겨를도 없이 생존을 하고자 살아가고 있으며,
남편 살아있을때,
보훈병원 말고 좋다는 약 다 써보고 이병원 저병원 기웃거리다가,
결국,
그나마 젊은 날 건강할 때 조금 벌어놓은 알량한 돈 마저 다 털어먹고
떠나버렸으니, 그 자식들도 고엽제라는 그 저주를 받은 2세는 물론,
고엽제 2세가 아닐지라도,
당사자들이 고엽제 후유로 인하여 집안 다말아 먹은 터라,
가난이 되물림되어 자식들이 몆명이든 저하나 살기 바쁘니,
홀로 미망인이 된 어머님을 모시기는 커녕,
그 미망인은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에서 제외되어,
정부로 부터 아무런 혜택도 못받고 있으며,
그 책임을 져야할 국가보훈처는 입 싹 닦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남편 잃고 국가로 부터 소외받아,
정말로 그 설움과 괴로움은 너무나 커서,
살아 있는 것조차 고통으로 남아 남편 따라가고 싶어도,
차마 자살할 용기도 없어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고단한 삶을 보내는 미망인분들이 우리들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참담한 현장을 보면 너무도 기가막혀 가슴이 미어 옵니다.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위하여 충성을 하기 위하여 군대를 갔고,
군명에 의하여 월남전에 파병 되었으나,
그 당시, 군 지휘부에서 고엽제에 대한 경고를 알리는 전통이나,
일절 아무런 독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고엽제 섞인 물을 마시고,
또 그 물로 씻었으며,
고엽제 환경 속에서 파병기간 내 일상적인 병영생활을 하였기에,
그 독성이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었으므로,
결국은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지자 그 증세가 악화되어,
파리약 뿌리면 파리가 툭툭 하나둘 떨어져 바둥거리다가 죽듯,
고엽제로 인한 고통으로, 시름시름 알다가 하나 둘 역전의 용사들이
쓰러져 사라지고, 그 모든 행복을 앗아버린 것도 부족하여,
남겨진 것은 주변에 대추나무 연 걸리듯, 여기저기에 빚더미 속에 가두어,
가족들에게 가난 되물림을 무슨 큰 유산인양,
한아름 남기고 떠나야만 하는,
죄많고 한많은 생을 종지부 찍는 가련한 고엽제후유의증 선배님들.....
정말로...... 정말로 말입니다......
군에서 교통사고로 부상당하여 상이 5급이 된 저는......
그나마 고엽제후유의증 선배님들보다는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어제 역삼동에 소재한 고엽제 미망인회 최순남 회장님과 상담중에
그 분들은 제게 형수님뻘들이지만,
차마 사내가 여자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할 수는 없고,
울분과 설움을 주제할 수 없어 속으로 내내 울었답니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자꾸만 자판위에 뚝뚝 떨어지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아마도..... 아마도 말입니다......
이 잘난 나라 위정자들과 해당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를 원망하는
통한(痛恨)의 피눈물일 것입니다.
2009년 12월 3일.
보훈지킴이 대표회원 이 경 현 배상.
보훈지킴이 마창진팀장 김철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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