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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열강의 안보정신과 神士道
작성일 2010-08-12작성자 이찬모조회수 517
국운에 대한 교훈들 1807년 독일은 나폴레옹 군대에 패했다. 국민들은 절망 속에서 날로 타락해 갔고, 사회에는 이기심이 충만했다. 도덕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가 바로 당시의 독일사회였다. 이때 한 사람의 지식인이 나타나 ‘독일국민에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피를 토하는 설교를 했다. 철학자 피히테(Johann Fichte, 1762~1814)였다. “독일이 왜 패망하였는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패한 것은 독일인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국가 혼을 길러야 한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자” 그 후 64년이 지난 1871년, 독일국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돌아오는 영웅 몰트케(Helmuth Karl B. von Moltke, 1800~1891)원수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때 과묵한 사상가로 알려진 몰트케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공이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 무임승차를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선진국 지도자들 미국의 영웅 케네디 대통령은 해군에 들어가 남태평양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그로부터 얻은 통증으로 인해 평생 동안 진통제와 각성제로 살았다 한다. 케네디는 척추부터 창자까지 성한 데가 없었지만 육군장교 후보생 시험, 해군장교 후보생 시험에 줄기차게 도전했다. 그리고 퇴짜를 맞았다. 결국 그 억만장자 아버지에게 애절한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인맥을 움직여 아들을 해군에 입대시켰다. 모두가 2차대전에 참전하는데 참전대열에 끼지 못한 무임승차자의 자격을 가지고는 지도자는커녕 공직에조차 갈 수 없었던 것이 미국사회의 도덕률이었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이었다 한다. 그런데 그는 신체검사에 합격하기 위해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군에 입대했고, 1차세계대전에 포병 대위로 프랑스에서 싸웠다한다. 영국이 전쟁을 치르면 전선에서 가장 앞장서는 사람들이 귀족들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이라 한다. 가장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적의 기관총을 향해 가장 앞서 달려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 한다. 1950년대에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 이든, 맥밀런이 바로 이들이었다 한다. 이들 학우들의 3분의1이 전사했고, 영국 귀족의 20%가 전사했다한다.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 농민보다 몇 배씩이나 높았다 한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다. 6.25전쟁 초기에 참전한 24사단장 딘 소장이 물을 찾는 부하에게 물을 떠다주기 위해 밤중에 벼랑으로 내려가다가 심한 부상을 당해 결국 포로가 됐다. 86kg의 체중이 2개월 만에 58kg가 되었다. 밴프리트 장군이 6.25전쟁에 아들을 참전시켰다가 그 아들을 잃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클라크 장군도 한국전에 아들을 보냈다. 워커장군은 아들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고, 스스로는 목숨을 잃었다. 일본 역사가들은 사회지도층의 참전분위기 측면에서 일본은 미국 및 영국에 비해 상대가 안 될 만큼 매우 저조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2차대전에서 일본은 패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고 진단했다한다. 우리의현실은 어떻한가? 이명박 대통령을비롯한 지난 지도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모두 이런 저런이유로 군을 기피한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이나라 고위공직자의 50%이상이 군 기피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슴에 손을대고 반성치않으면 이나라의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는 없을것이다. 8 월 12일 상이군경회 수원시지회 이찬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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