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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독립운동 입증 위해 36년 고군분투
작성일 2011-01-08작성자 정병기조회수 924
증조부 독립운동 입증 위해 36년 고군분투 2011년 01월 08일 (토) 15:49:04 천지일보 명승일 기자 msi@newscj.com 36년간 항일행적 찾는 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씨 “정부가 나서야” “증조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습니다.” 정병기(54) 씨는 자신의 증조부가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36년째 발자취를 좇고 있다. 정 씨에 따르면 자신의 증조부 정용선(1883년)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의성 풍기 울진 등지에서 독립군 자금을 모았다. 그런 증조부가 1916년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10여 년이 지난 1928년 당시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만 날아들었다. 정 씨는 “당시 경성형무소는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들이 투옥된 곳으로, 고향이 경북인 증조부가 경성으로 압송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1980년에 강도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려 국가유공자가 됐다. 현재 상이군경 회원으로 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증손자인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증조부의 항일(抗日)행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진정한 독립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씨가 포기하지 않고 증조부의 행적을 좇은 결과,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기록이 담긴 호적을 발견 했다. 증조부 생존 당시 소년이었던 90대 노인의 증언도 확보했다. 하지만 이 자료 외에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없어 답답할 뿐이다. 보훈 당국은 구체적인 죄목이 담긴 수형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봉화군에 증조부의 수형 기록을 요청했으나 “형의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수형인 명부를 폐기했다”는 답변만 들었다. 정 씨는 “정부가 자료를 없애놓고 후손에게 그것을 찾으라고 하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꼭 있을 것”이라며 “올해엔 증조부가 명예를 꼭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뉴스천지(http://www.newscj.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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