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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韓 西海 延坪島 砲擊事件 1週期 糾彈大會! 1, 2, 3, 4.
작성일 2011-11-25작성자 송철효조회수 537

* 北韓 西海 延坪島 砲擊事件 1週期 糾彈大會! 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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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槪    要 : ⑴ ~ ⑽.  

⑴. 日 時 : 2011年 11月 23日. 14:00 ~ 17:00.

⑵. 場 所 : 全州市 慶園洞 오거리 廣場.

⑶. 主 催 : 國防部/國家報勳處.

⑷. 主 管 : 全羅北道 在鄕軍人會 및 各 愛國團體.

⑸. 目 的 : 北韓 西海 延坪島 砲擊事件 糾彈大會.

⑹. 人 員 : 各 愛國團體 200名.

⑺. 氣 候 : 늦은 가을비에 추위가 스며오는 날씨.

⑻. 寫 眞 : 添附 하였습니다.

⑼. 作 成 : 國家報勳處 알림이/諮問委員 龍湖 宋 哲 孝.

⑽. 槪 括 : 序 言. 

2011年 11月 23日 오늘은 지난 2010年 11月 23日 14:34分 西海 延坪島 우리 海兵隊 基地와 民間人 마을에 海岸砲와 曲射砲로 推定되는 砲彈 100餘 발을 砲擊한 1週年을 맞이하여 이제는 더 以上 우리나라에 그러한 挑發 行動을 하지 못하도록 糾彈大會를 開催하였습니다. 北韓의 이번 砲擊 挑發로 인해 海兵隊 2名이 死亡하고 16名이 重輕傷을 입었으며 民間人은 2名이 死亡하고 10名이 負傷당했습니다. 1953年 07月 休戰協定 이래 民間을 相對로 한 大規模 軍事 攻擊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軍 當局은 延坪島 砲擊 事件 以後 진돗개 하나를 發令했고 交戰規則을 全面 修訂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0年 11月 28日 ~ 12月 01日 西海 隣近 우리 領海와 公海에서 思想 最大 規模의 聯合訓練이 實施된 데 이어 12月 20日 延坪島에서 射擊訓練이 實施됐으며 오늘 2011年 11月 23日 事件 1週期를 맞이하여 延坪島 近海에서는 實戰과 같은 訓練을 實施하며 國民 모두는 延坪島 事件 糾彈 大會를 擧行하였습니다. 2011年 11月 23日 오늘은 延坪島 砲擊事件 1週期 故 서정우 下士, 故 문광욱 一兵, 故 김치백씨, 故 배복철씨 당신들의 犧牲을 잊지 않겠습니다. 延坪島砲擊은 2010年 11月 23日 午後 2時 30分境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大韓民國의 延坪島를 向해 170餘 發을 砲擊한 事件이다. 이에 海兵隊 延坪部隊는 砲擊 直後 80餘 發의 對應射擊을 實施하였으며 挑發直後 西海 5都에 진돗개 하나를 發令 한 後 北韓의 挑發임이 明確해지자 大韓民國 國軍은 全軍에 진돗개 하나를 發令하였습니다. 이 事件으로 인해 大韓民國의 海兵隊員 2名이 戰死했고 16名이 重輕傷을 입었으며 大韓民國의 民間人도 2名이 死亡했고 3名이 重輕傷을 입었습니다. 北韓의 人命被害 規模에 대해서는 各種 言論媒體에 따라 7名 程度로 推定하고 있으나 正確한 確認은 되고 있지 않습니다. 南北間의 交戰 中 民間人이 死亡한 것은 韓國 戰爭 以後 이번이 처음으로 國際社會의 큰 關心을 모았습니다. 中華人民共和國을 除外한 各國 政府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挑發을 糾彈했으나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大韓民國에 責任을 넘기며 正當한 軍事的 對應이라고 主張했습니다. 이 事件은 天安艦 沈沒事件 以後로 벌어진 것으로 南北間의 葛藤이 더 深化되었으며 延坪島 住民들은 大部分 섬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 內 容 : ⑴, ⑵, ⑶.  

⑴. 그동안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大韓民國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번 事件을 主導하여 對話局面을 이끌어내 主導權을 잡기 위한 理由라는 分析도 提起됐으며 지난 11月 22日에 Uranium濃縮 施設을 公開하면서 對話局面을 誘導했으나 失敗하면서 좀 더 强한 挑發을 通해 局面을 轉換하겠다는 戰略이 있었다는 分析이 提起되고 또한 護國訓練에 對한 斷乎한 對應 意志를 보이기 위한 것이며 西海 北方限界線(NLL)을 無力化하겠다는 意圖도 있었을 것으로 分析되며 天安艦 沈沒 事件 以後 孤立된 狀況을 突破하기 위해 韓國과 美國을 겨냥해 强溫兩面 戰術을 使用해왔던 北韓이 마지막 Card를 꺼낸 것이라는 推測도 提起되고 있습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打擊 地點을 延坪島로 잡은 理由에 對해서도 分析이 이어졌습니다. 北方限界線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保有한 西海岸 砲에서 打擊하기 適當한 地點이며 波及力도 크다는 點을 利用한 것으로 分析되고 또한 陸地에 比해서 擴戰 可能性이 적다는 點도 苦慮되었을 것으로 分析됩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延坪島를 攻擊한 것은 大韓民國 軍의 護國訓鍊에 對한 反撥이 아닌 意圖的 挑發이라고 하며 이에 對한 證據로 이용걸 國防部 次官은 民主黨 指導部에 對한 非公開 報告를 通해 軍이 延坪島 一帶에서 實施한 訓練은 護國訓練이 아니라 單純히 週期的으로 實施되는 射擊訓練이며 射擊訓練 方向도 NLL 南쪽을 向한 點 等을 들었습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主張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UN大使인 박덕훈은 南側이 먼저 우리 領海에 砲彈을 發射했다면서 이번 措置는 自衛的 措置였다고 主張했습니다. 이번 軍事的 挑發은 이른바 漁船團束을 口實로 海軍艦艇을 우리 側 領海에 頻繁히 侵犯시키면서 北方限界線을 固守해보려 했던 惡辣한 企圖의 延長이라고 主張하였습니다. 또한 祖國平和統一委員會는 우리의 領海에 直接的으로 불질을 한 傀儡軍砲隊를 正確히 命中打擊 하였다며 大韓民國의 先制攻擊을 主張하였습니다. 民間人 被害에 대해서도 亦是 民間人 死傷者가 發生한 것이 事實이라면 至極히 有感스러운 일이라면서도 砲陣地 周邊에 民間人을 配置해 人間防牌를 形成한 大韓民國의 非人間的인 處事에 있다고 非難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國際法 違反 大韓辯護士協會 等에 의하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11月 23日 延坪島에 直接 大砲攻擊을 한 것은 國際聯合 憲章과 國際法을 違背한 戰爭挑發 行爲로 看做된다. 이 같은 軍事挑發은 無力行使를 禁止하는 UN憲章 第2條 4項과 停戰協定 違反에 該當하며 UN憲章 第51條가 個別 國家의 自衛權(Right of Self-Defense)行事를 規定하고 있지만 大韓民國 國軍이 自己 領域 內에서 自體 防衛訓練을 하고 있었던 狀況에서 北韓軍이 122mm 放射砲까지 動員하여 無防備 狀態의 民間人地域을 無差別 砲擊을 加한 行爲는 自衛權에 該當한다고 보기 어렵다고하며 따라서 大韓民國 政府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이번 延坪島 砲擊攻擊을 UN安全保障理事會에 回附하여 責任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大韓民國의 市民團體 모임인 反 人道犯罪調査委員會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延坪島 砲擊이 計劃的인 韓國 領土 照準 攻擊 民間人 居住 地域 攻擊 大量 殺傷用 放射砲彈 使用 等의 攻擊 有形으로 보아 延坪島 砲擊 挑發은 UN憲章 第 2條 4項 Rome規約 第 8條에 抵觸되는 戰爭 犯罪라고 强調하며 北韓의 金正日과 그의 後繼者 김정은을 戰爭犯罪 等의 嫌疑로 國際刑事裁判所(ICC)에 告發하기로 했습니다. 2010年 12月 06日 國際 刑事 裁判所는 反 人道犯罪調査委員會의 眞定에 따라 事件에 對한 豫備調査에 着手했습니다. 豫備調査의 對象은 延坪島 砲擊과 天安艦 沈沒 두 事件이고 擔當 檢査는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首席檢査로 斷乎하게 對應하되 擴戰되지 않도록 指示했다 고 알려졌으나 靑瓦臺 弘報首席은 確戰 自制와 같은 指示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⑵. 2010年 11月 23日 午前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大韓民國 國軍과 駐韓美軍의 陸海空 聯合 護國訓練에 대해 自國에 攻擊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中斷을 要請하는 傳統文을 發送했으나 大韓民國 國防部에서는 年例的인 訓練일 뿐이라며 要請을 拒絶하고 豫定대로 訓練을 進行하였습니다. 같은 날 14:34分 境 訓練 終了 後 한 時間되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76.2mm 平射砲 122mm 大口徑 砲 130mm 大口徑 砲 等을 利用해 延坪島 軍部隊 및 隣近 民家를 向해 개머리 海岸附近 海岸砲基地로부터 砲擊을 始作하였습니다. 이에 對해 大韓民國軍은 첫 打擊 13分 後 K9 自走砲를 무도 砲陣地에 50發 개머리 砲陣地에 30發 總 80勵發을 發射하였습니다. 北의 攻擊은 午後 3時 41分까지 繼續되었으며 170餘發이 發射된 것으로 把握되었습니다. 大韓民國軍은 北의 攻擊 4分 後 午後 2時 38分 KF-16 2대를 緊急 出擊시키고 以後 追加로 KF-16 2대와 F-15K 4대를 出擊시켰습니다. 그러나 挑發이 繼續되지 않아 實質的인 打擊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白翎島 附近 朝鮮人民軍 海岸砲 基地에서 海岸砲 入口 開放이 確認되기도 하였으나 攻擊은 繼續되지 않았습니다. 延坪島 砲擊으로 인해 大韓民國 政府는 緊急 安保關係長官會議를 召集하여 後屬措置로 25日 安保經濟點檢會議에서 交戰守則을 修訂하여 民間人이 攻擊 받을시 더욱 强力한 對應方案을 講究함과 同時에 西海 5島의 軍戰力을 增强하면서 國防力 强化를 通해 國民保護에 萬全을 期하고 京畿道地防警察廳과 江原道地方警察廳은 乙號 非常令을 내렸습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發射한 砲彈 中에는 人名 殺傷用으로 使用되는 放射砲 熱壓力彈은 空中에서 터지면서 작은 破片들로 퍼지기 때문에 朝鮮人民軍이 意圖的으로 人名을 殺傷하기 위한 目的이 있었다는 分析이 提起되었습니다. 이 事件으로 大韓民國은 延坪島에서 服務하던 海兵隊員 2名(故 문광욱 一兵, 故 서정우 下士)이 戰死하고 民間人 2名이 死亡하였으며 民間人 3名과 海兵隊員 16名이 重輕傷을 입었습니다. 이밖에도 住宅 12洞이 大破되었고 25洞은 불에 탔으며 車輛 3대와 Container Box도 여러 채 破壞되었고 延坪島의 家屋 19채가 破損되고 불에 탔으며 산불이 發生했습니다. 延坪島 住民의 1/3假量은 天主敎 信者로 延坪島의 唯一한 天主敎 聖堂인 延坪島 聖堂마당 聖母像을 中心으로 앞뒤 두 發의 砲彈이 떨어져 聖堂 建物과 司祭館 等이 榴彈으로 破損되는 避害를 입었으며 乘合車가 廢車 水準으로 破壞되었습니다. 한편 仁川廣域市敎育廳은 避亂나온 延坪島 地域 學生 143名 가운데 居住地를 定한 121名을 仁川과 京畿地域의 各 學校에 配置했습니다. 2010年 11月 27日 午前 10時 國軍首都病院에서 戰死한 서정우 下士와 문광욱 一兵의 葬禮가 海兵隊葬으로 치러졌습니다. 大韓民國 經濟도 影響을 받아 砲擊 當日 消息이 알려진 것은 去來所 市場이 마감된 以後였기 때문에 株價가 影響을 받지는 않았지만 美國 現地에서 去來되던 換率은 40圓이나 暴騰(圓貨切下)하기도 했습니다.  

⑶.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延坪島 駐屯 大韓民國 海兵隊의 對應射擊으로 朝鮮人民軍이 相當한 被害를 입었다고 言及하였으나 正確한 被害 狀況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被害 狀況에 대한 當國의 公式 立場發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平安北道 對北 消息通에 따르면 지난달 23日에 朝鮮人民軍의 延坪島 砲擊 挑發에 對한 大韓民國 國軍의 反擊으로 軍部隊 幕舍는 물론이고 다른 一般人 住宅들도 相當히 破壞됐으며 特히 民間人들을 防牌로 세워 軍 基地를 保護하고 있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當國의 非人道的인 處事로 인해 相當數 民家는 破壞됐으나 北韓 當國이 砲擊挑發을 하기 前에 民間人은 모두 避身시켰기 때문에 人命被害는 없었다. 고 말했습니다. 韓國 海洋硏究院 안유환 博士는 現在 衛星寫眞을 가지고 우리 側 對應射擊으로 인한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被害狀況을 分析 中에 있으나 豫測이 쉽지 않은 狀況이라고 說明했습니다. 國防部長官은 海岸砲에 比해 火力이 越等히 優秀한 K9 自走砲,로 對應 射擊을 했기 때문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相當한 被害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軍 高位關係者는 大統領에 報告한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避害狀況이 담긴 衛星寫眞이 있었다고 證言하며 K-9 自走砲의 砲擊으로 생긴 커다란 웅덩이들과 부서진 施設物 等의 모습이 담겨 있다며 무도·개머리 地域에 火災가 發生했고 개머리 陣地에는 우리 砲彈에 맞은 多數의 痕迹이 識別됐으며 무도 地域에서도 交通湖가 埋沒됐다고 밝혔으나 一部 言論에서는 12월 01일 公開된 北側 被害狀況이 담긴 衛星寫眞에서 大部分 砲擊 陣地에서 빗나갔으며 14發은 논밭에 떨어져있는 痕迹이 있어 實質的인 被害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推定하고 있습니다. 12月 04日 日本의 교도通信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政府 關係者가 大韓民國의 對應砲擊으로 인한 死傷者와 關聯 4名의 死亡者가 發生한 大韓民國보다 몇 倍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아직까지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被害狀況에 對한 結論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2010年 11月 23日의 延坪島 砲擊 事件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徹底한 計劃 아래 實施되었다는 分析이 支配的이며 그 理由는 大韓民國 國軍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에 黃海上의 軍事訓鍊을 通報한 바 있기 때문에 金正日의 同意하에 이루어졌을 可能性이 높다는 것이고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金正日 國防委員長의 後繼者 김정은이 延坪島 挑發 準備를 지난달에 이미 指示한 情況도 있었는데 日本 아사히 新聞은 12月 01日 北韓 消息通을 引用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난달 初 敵의 挑發 行爲에 언제라도 反擊할 수 있는 態勢를 갖추라는 指令이 朝鮮人民軍 幹部들에게 下達됐다고 報道했습니다. 이것이 事實이라면 延坪島 砲擊은 豫定됐던 行動이며 充分한 期間을 가지고 準備한 것으로 朝鮮人民軍이 김정은의 指示를 받고 攻擊 期會를 엿보고 있다가 大韓民國 國軍의 지난 23日 訓練을 口實로 砲擊을 敢行했을 可能性이 높으며 延坪島 武力攻擊 直前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MiG-23機 5대가 西海 5島 隣近에서 哨戒飛行을 했으며 김정은 後繼 構圖를 더욱 確立하기 위한 것이라는 分析이 提起되고 特히 김정은은 北側에서 砲兵 專門家로 美化되고 있다는 點에서 그의 業績을 極大化하기 위한 것입니다.  

3. 結 論.  

大韓民國 國軍의 對應에 對한 指摘이 提起됐습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大韓民國에 對한 打擊을 準備한다는 諜報를 3個月 前부터 確保하고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北이 砲擊을 始作한지 13分 後에 對應射擊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늦장對應이라는 批判이 提起됐습니다. 12月 01日 열린 國會情報位에서 지난 08月 監聽을 通해 西海 5島에 對한 攻擊計劃을 確認하지 않았느냐는 議員의 質問에 國情院은 그런 分析을 했다고 答辯하여 事前에 挑發 徵候를 把握하고 있었음을 確認했습니다. 이에 對해 軍은 監聽된 北韓軍의 作戰 計劃이 秘文이 아닌 平文이었기 때문에 延坪島를 直接 攻擊하는 深刻한 徵候로 判斷하지 않았다고 答辯했습니다. 또 攻擊 當時에는 北韓軍이 無線이 아닌 有線을 通해 交信했기 때문에 正確한 攻擊徵候를 把握하지 못했다고 說明했습니다. 當時 監聽 內容은 海岸砲 部隊 射擊準備를 하라는 程度의 內容으로 延坪島에 對한 大規模 砲擊을 豫想할 程度는 아닌 通常的인 水準의 威脅으로 判斷했습니다. 大韓民國 國軍의 裝備 中 相當數가 제대로 整備가 되지 않은 狀態였던 것도 問題가 되었습니다. K-9 自走砲 6문中에 折半이 使用하지 못하던 狀態로 드러났습니다. 大韓民國 國軍은 처음에 6문을 利用해 射擊했다고 밝혔다가 4문 3문으로 繼續 말을 바꿔 嚬蹙을 샀으며 大韓民國 國軍은 6문 中 2문이 北韓의 砲 射擊에 따른 衝擊으로 電子回路障碍를 일으켰고 1문은 射擊訓練 때 發生한 不發彈이 끼어 射擊에 加擔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砲兵 探知 Radar도 먹통인 狀態였던 것으로 드러나 軍의 對備態勢가 全般的으로 未洽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大韓民國 國軍의 對應이 斷乎하지 못한 것에 對해서도 指摘이 이어졌습니다. 敵의 武力挑發에 2~3倍로 膺懲한다는 交戰規則을 勘案할 때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攻擊이 170餘發인 것에 比해 K-9 自走砲 80發로 對應한 것은 不足하다며 强力히 對應하지 못한 것에 對해 指摘했습니다. 동굴 안에 있는 海岸砲는 一般砲로는 制壓이 안 되므로 空軍機를 動員해서라도 攻擊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北韓이 1時間假量 繼續 砲 攻擊을 한 것입니다. 大韓民國 國防部는 12月 17日 海上訓練 中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傳統文을 늦게 發表했던 論難이 있었습니다. 11月 26日 延坪島에서 또다시 砲擊소리가 들려 大韓民國 國軍 當局이 照査에 나섰으나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訓練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大韓民國의 領海에 砲彈이 떨어진 것도 없었습니다. 이에 對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高度의 心理戰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는 分析이 提起되었습니다. 延坪島가 被擊되어 진돗개 하나가 發令되던 當時 首都圈의 한 部隊에서 勤務하던 幹部들이 飮酒를 하며 즐긴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延坪島 砲擊 消息을 TV로 보면서도 會食을 繼續 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술을 먹지 않았다고 主張했다가 論難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中國人 留學生이 延坪島 砲擊에 대한 意見을 韓國人으로 遁甲하여 中國의 어느 有力 週刊誌에 寄稿하였습니다. 延坪島 砲擊事態에서 活躍했던 海兵隊員들은 表彰狀을 謄記로 보내고 이렇다 할 補償이 전혀 없었다는 點도 指摘됐었습니다. 延坪島에 到着한 MBC 取材陣 35名이 11月 28日 午後 8時 30分부터 2時間假量 海兵隊 延坪部隊에서 運營하는 忠民會館에서 삼겹살과 麥酒 燒酒 30餘 甁을 곁들인 會食을 했는데 當時 忠民會館은 海兵隊 將兵들의 面會 場所로 當日 取材陣들에게 술을 팔지 않는다고 公表한 적이 있었습니다. 北의 攻擊으로 將兵과 民間人 4名이 숨진 狀態에서 言論 關係者들이 술을 마셨기 때문에 MBC側은 一部 事實에 대해서 反縛했습니다. MBC는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한두 잔 했을 뿐인데 一部 言論에서 惡意的으로 報道하고 있다고 하며 술을 마신 것은 事實이나 노래를 부르거나 高聲放歌한 적은 없는 것으로 把握됐습니다. 向後 우리 大韓民國을 다시는 이러한 北傀의 再 挑發 行爲에 對하여 積極 對處하고 우리 國民 모두는 一心으로 團結하여 國土防衛에 最善을 다 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4.感謝합니다! 2011.11.24. 國家報勳處 알림이 및 武勳會 諮問委員 龍湖 宋哲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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