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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참전 장병들의 권리 찾기 국민 청원
작성일 2012-02-25작성자 이대수조회수 947

월남전 참전 장병 생존권 요구

파월장병 권리 찾기 국민 청원 운동

자유우방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우들은 전사하고 부상당하고, 고엽제후유증과 풍토병으로 죽어가고,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는 등 전우들이나 가족들은 오늘날 까지도 희생을 당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파월장병의 희생이 조국근대화에 초석이 돼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여 다른 나라를 돕는 오이시디 회원국이 됐다.

이제 박정희 정권에서 산업자금으로 차용해 간 파월장병의 전투수당을 반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국가에 청원합니다.

 

첫째, 미국과 계약한 계급별 전투수당 금액, 사병들에게 지급한 금액, 정

     부에서 환수한 금액을 밝혀줄 것.

둘째, 과거사 진상조사위에서 본건도 조사할 것.

셋째, 파월 장병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

 

아래는 하소연! 전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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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왜냐면] 파월장병 권리 찾기 / 조재석

2012년02월16일 목

 

2월9일치 왜냐면 ▷ ‘고엽제 의증 판정도 받지 못한 파월전우들’을 읽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나는 월남전쟁에 참여했으며 동생은 최전방에서 근무하다 안전사고로 전사했다. 아들을 잃은 아픔에 병을 얻은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으나 막냇동생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내 자식이 육군 병장으로 군에 복무한, 자랑스러운 가족이라 자부하는 못난(군을 기피 안 한) 집안이다.

  구십이 가까워가는 아버지께선 ‘참전용사의 집’이란 판액을 현관에 붙여 놓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에 몇억원을 주면서 나라를 위한 전쟁에 나간 사람에겐 이게 뭐냐 분개도 하시며 둘째 아들과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어 삭이며 살아오고 있다.

  나는 60년대 말 군에 입대하였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그 시절. 군대에 가면 살이 붙어 온다고들 했다. 월남에 가면 떼돈을 번다니 가난한 병사들이 너도나도 사지에 지원했다. 내가 월남에 갈 땐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전사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소문에 지원자가 부족하여 강제로 차출당했다(안 간다고 항변했는데도).

  돈을 벌어 온다는 월남은 비참했다. 고엽제가 뿌려진 정글 속으로 작전에 나가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병사의 일이라 받아들였지만,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살아 귀국한다는 기쁨보다 귀국 준비에 허탈해했다. 당시 귀국 장병들은 박스 한 개(장교는 두 개)를 꾸려 가지고 귀국할 수 있었는데 그 안에 채워갈 내용물이 문제였다.

  앞서 파월돼 귀국한 선임 전우들은 어떻게 구했는지 미군들이 쓰던 선풍기며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들을 박스에 채워가서 큰돈을 마련하여 집안 형편이 폈다는 판이다.

  파월 병사들에게 지급된 월급(전투수당)은 (소문에) 600여달러인데 500여달러는 국가에서 산업자금으로 환수하고 우리에겐 50여달러를 지급하는데, 가정으로 40여달러를 송금하고 월남 현지에서 사용하라며 11달러를 지급받았다.

  작전에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와, 경계근무를 끝내고 공허한 외로움을 달래느라 전우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다 보면 11달러는 금방 달아났다. 목마름을 냉수로 해결하며 자린고비로 생활한다 해도 귀국박스 채워 자랑스레 귀국하긴 영 글렀다.

  선임병의 귀국을 돕기 위해 탄피를 모으고 맥주캔을 모아서(심지어 미군 쓰레기장에서) 박스를 채워 귀국하는 형편이라서 귀국을 연장하는 병사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며 타국의 전장에 목숨을 걸고 왔지만 빈손으로 귀국하기가 가족들에게 송구했던 것이다.

  열기로 쏟아낸 땀 속의 염분 보충을 위해 알약 소금을 먹으며 낮을 보냈고 밤엔 모기 쫓는 물약을 온몸에 문지르고 고약한 냄새와 끈적거림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월남생활이 지긋지긋했다. 수당을 열배 더 준다 하여도 싫고 하루빨리 귀국할 날만 세었다. 고국이, 고향이, 가정이 한없이 그리웠다.

  베트콩이 날린 포탄이 영내로 날아오는 횟수가 잦아지는 속에서 불안과 초조함에 늘 긴장 속에서 생활했다. 민주자유 우방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론 병사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사병들은 알 리 없지만, 미국과 월맹이 휴전협정을 하고 있는데도 작전은 더 많아졌다.

  모 부대가 월맹군에 타격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번지고 우리 부대가 지원을 위해 이주를 한다니 병사들은 불안해했다. 전선이 혼미해지자 귀국이 취소된다는 둥 어수선한 가운데 난 더블백 하나만을 둘러메고 70년 말에 귀국했다. 깡마른 나의 몰골을 보신 어머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귀국 후 반년이 넘도록 내 행동거지가 이상했지만 말 안 했다고 어머니께서 나중에 알려주셨다. 혹여 정신병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보약이라며 이것저것 먹이고 원통함을 참고 기다리느라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부모님 슬픔이야 말할 수 없지만 산 자들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병 얻어 고통 속에서 살아온 동지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100살을 산다는 이 좋은 세상을 환갑도 못 살고 간 상술이, 환갑을 갓 넘긴 종남, 신경이 점점 마비되어 병원에서 아픔을 삭이는 기옥이, 종아리의 살이 썩어 도려내고 절뚝이는 내구, 뇌졸중으로 드러누운 세명이….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아픔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으랴!

  파월했던 사람들이 특별히 병약한 원인은 밝혀져 국가에서 치료를 해준다 한들 건강을 잃었는데 천금이 있은들 뭐하랴.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은 어떻게 치료받을까? 조국근대화의 초병이었다는 긍지를 갖고 참전유공자로 살아가라며 국가유공자증을 쥐여줌은 아이들의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면’에 글을 쓴 이경래 전우의 요구처럼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산업자금으로 차용해 간 전투수당을 반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다음 사항에 대하여 관계기관은 답해주기 바란다.

첫째, 미국과 계약한 계급별 전투수당 금액, 사병들에게 지급한 금액, 정부에서 환수한 금액은 얼마인지 밝혀줄 것(이런 내용은 몇 년 전 국방부에 문의했는데 묵살당했음). 둘째, 과거사 진상조사위에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처리해 왔는데 본건도 조사할 것. 셋째, 파월 장병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

  월남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은 병마에 생활고로 시달리는데 대한민국은 그 위상이 날로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아프간에, 레바논에 평화유지군을 우리의 세금으로 파병하는 경제 대국에 이르렀다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부강해졌는데 목숨 바쳐 희생한 파월 장병들에 대해선 그 누구(정권)도 말하지 않음은 참으로 야속한 일이로다.

  울지 않으면 젖을 안 주는 사회는 군사정부를 거치며 끝났다 여겼는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경제 대국이 됐다는 오늘에 이르렀는데도 파월 장병들의 노고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음에 몹시 서운하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느라 그동안엔 참전용사에게 힘쓸 겨를이 없었다 치지만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어렵게 살아가는 희생당한 장병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강력히 요구한다.

조재석 대전시 중구 산성동

 (303ai0@daum.net)

다음 카페 : (파월장병 권리 찾기http://cafe.daum.net/VWgchaj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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