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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과 수사관
작성일 2012-02-24작성자 김철수조회수 702

제목 : 어떤 전직 수사관의 한(恨)

 

"한명숙의 거짓말 진술 "

어떤 전직 대공수사관의 한(恨)

 

어제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샀다. 1980년 퇴임할 때까지 10여 년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에서 수사관으로 일했던 이기동 씨가 쓴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 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이 씨가 남산의 대공수사국에서 일하던 시절의 대공수사관련 비화들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수사 비화 가운데 필자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필자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대목이란 1979년에 보도되었던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 관련자 한명숙 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책 37~47쪽에 실려 있는 이 씨의 서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최초로 연행한 주요 핵심 대상은 세 사람, 바로 이우재(당시 43세: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및 마사회회장), 신인령(당시 35세: 전 이화대학총장), 한명숙(당시 35세:전 국무총리) 간사였다.…나는 그들 중 한명숙 간사를 담당할 수사관이었다.…병치레한 듯한 가냘픈 몸매에 누렇게 뜬 얼굴로 진술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무런 용공혐의도 없는 여인을 연행해 무언가 잘못된 심문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잠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판단이었다. 나는 그녀의 철저한 위장전술에 놀아난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노동자를 위한 사회 저항 운동가로 변신을 시도, 중학교 졸업장을 들고 서울 영등포에 있는 A공장에 취업해 관악구 봉천동 산꼭대기 판자촌에 자취방을 얻고 공장 직공들과 똑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의 뜻에 동조한 여공들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어들여 ‘우리는 회사를 위해 밤낮으로 죽도록 일만 하는데 급여는 쥐꼬리 만큼밖에 못 받는다’, ‘사장은 호화주택에 살면서 자식들을 유학시킨다더라’, ‘왜 우리가 희생해서 사장만 배부르게 하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들을 세뇌시켰다.

 

“똑똑하고 미리가 비상하다고 판단되는 여공을 골라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면서 제2단계 의식화 교육에 돌입했다. 그녀는…‘우리가 이렇게 죽도록 일하면서 회사로부터 천대받는 것은 이 사회 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우리의 실상을 공장 밖의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 여공들에 철저한 정신무장을 시켰다. 이로 인해 ‘의식화’된 여공들이 점차 늘어났고 이들은 회사의 강력한 저항집단으로 성장해 나갔다.

 

“여공들은 노임을 올려달라는 협상을 시작으로 하여 작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흔들어 대는 것으로 드디어 언론을 통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찰력이 동원되고 충돌이 시작되면 한명숙 그녀는 종적 없이 A회사에서 사라졌다. 다음 B회사에서도 그녀의 시도는 계속되었고 그녀와 같은 사회 저항 운동가들로 인해 회사에서부터 심한 노사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75년 후반기 한명숙은 노동운동 현장에서의 활동을 접고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이우재· 신인령 등과 합류했다. 그들 간사 3인은 그곳 숙소 등에서 아카데미 수강생들에 대한 사회주의 ‘이념교육’ 방향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결속했다. 그해 어느날인가는 3인이 강원도 강릉 근처에 사는 은퇴한 좌파 노학자 김00 교수를 찾아가 그로부터 사회주의 이론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상경하기도 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대한 법정에서의 몇 회째 공판이었던가? 나는 법정 검사석 바로 아래 좌석에 앉아 재판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내가 담당했던 피고 한명숙의 차례, 그녀는 진술 도중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그때 고문당한 저의 좌측 어깨를 좀 봐 주십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그녀에게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다는 말이오?’ 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검사 밑에 앉아 있는 내 담당 수사관이 담뱃불로 내 왼쪽 어깨를 지져 상처가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 라고 하지 않는가?

 

“청천벽력! 이때 재판을 참관한 일부 방청객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와! 저 새끼 죽여라, 저 남산 고문자 죽여!’ 하고 들고 일어섰다.…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심 박사가 도착했고 심 박사는 법정에서 그녀,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를 들추고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어깨의 상처를 살피고는 상처가 났다는 왼쪽 어깨를 방청석을 향해 보이며, ‘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마한 흉터가 최근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 같습니까?’ 하고는, 다시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 사람이 3~4때 종기가 생겨 난 흉터 자국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라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는 또다시 ‘저 새끼도 똑 같은 남산 앞잡이다!’ 하면서 재차 소란을 피웠다.

 

“아니, 고문이라니! 그것도 내가 담뱃불로 지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법치국가라지만, 그녀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지하실에서 소주를 사달라고 하면 소주를 사오고, 안주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안주 사다 주면 실컷 먹고, 술주정까지 하던 여자가 저렇게 악독해지다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나에게 ‘그때 그녀를 고문했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차례라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 라고 답하겠다.

 

“오늘날 시대가 좋아(?)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까지 출세한 그녀는 꼭 그때의 ‘담뱃불 고문’ 주장이 허위임을 만천하에 밝히고 필자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호 변호인단을 구성, 확인하고, 그 당시 지하 심문실을 완벽하게 녹화한 필름이 있을 것이니 국정원에 요청하여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심문실의 전 과정을 만천하에 공개토록 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당시 본 사건 주범 3인에 대한 전체 심문과정이 녹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독자들이 위에 인용된 전직 대공수사관의 한 맺힌 글을 읽어보고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2011. 10. 29.>

 

2011년 10월30일

글쓴이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경남 진해 老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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