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가 되어버린 마지막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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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6-16작성자 한석범조회수 585 |
사람은 누구나 숙명과 운명을 동시에 부여받고 태어난다고 한다. 숙명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보니 첩첩 산골이었고 가난한 늙은 아버지의 막내 아들이었다. 6.25의 포성이 막 가셨지만 보릿고개의 긴 장막이 내 유년 시절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버지의 막내 사랑은 끔직하여 들로 산으로 다니시면서 온갖 먹거리로 내 배를 채워 주었다. 봄에는 찔레와 오디를 따서 주었고 여름에는 산딸기를 따다 주셨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늙은 아버지가 먹거리를 들고 나타나면 까닭없이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먹거리의 달콤함 보다도 허리굽고 늙은 아버지가 더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의 세월을 뛰어 넘지 못한 아버지는 나를 진학 시키지 못했다. 논으로 밭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농삿일을 가르쳤다. 나의 마음속에는 책만 어른거렸다. 서울로 가면 책을 실컷 읽고 지긋 지긋한 농삿일도 면할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서울행 야간 열차를 타고 말았다. 아버지는 까맣게 잊고 서울시민이 되어 열심히 일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며 세월 가는줄 모르고 지냈다. 내 어깨가 넓어지고 철이 조금 들 무렵이었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처음으로 아버지가 생각 났다. 나는 평화 시장으로 가서 아버지의 내의 한벌을 샀다. 정성껏 포장을 하여 소포롤 보냈다. 항상 핫바지만 입고 살았던 아버지가 몹씨도 측은한 생각이 났던 것이다. 늦 여름이었지만 겨울이 빨리 찿아오는 지리산 기슭의 고향과 아버지가 문득 생각 났기 때문이었다. 초겨울이 닥쳤다. 공장의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시골의 이장님이었다. 지금 아버지께서 위독하신데 급히 내려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야간 열차에 올라 아버지를 생각 했다. 전쟁에 큰 아들을 잃고 삶에 의욕을 잃고 사시다가 늦둥이인 내가 태어나자 심봉사마냥 핏덩이인 나를 앉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 아버지, 열이나 되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지문이 닳도록 일을 하신 나의 아버지, !.....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둘러모여 있었고 막 염을 시작할 찰라였다. "아이고 이놈아 조금만 일찍 오지 않고 너만 찿다가 임종을 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앉고 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굵게 패인 주름살 위로 평화가 가득한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보내준 하얀 내의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예뻐하셨던 막내가 사준 내의를 날마다 꺼내놓고 기뻐 하셨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수의 속에 내가 보내준 내의를 입혀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멀고 추운 황천을 가시는 길에 막내가 사준 따뜻한 내의를 입으면 한가지 한은 풀릴것이라고 모두 찬성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굳어버린 아버지의 손을 부비며 꺼이 꺼이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언젠가 도민증을 주민등록증으로 교체할 때다. 아버지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닳아 없어져 버렸다. 몇차례나 면소재지 지서를 찿았으나 번번히 실패 하였다. 나는 손마디를 한참 동안이나 어루만지며 회한을 쏟아 놓고 있었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가족의 무거운 짐도 벗고 손도 고히 간직 하구요,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께 겨우 내의 한벌만 사준 이 불효 막내를 용서하시고 편히 가세요.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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