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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영혼(靈魂)
작성일 2012-06-27작성자 김윤청조회수 774

                        대통령 의 영혼(靈魂)

 

꼭 10년전 이맘때-2002년 6월29일, 나는 도쿄 나리따 공항에 내리자 마자 엄청난  뉴스에 접하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비행기 안에 있는 동안 까맣게 몰랐던 뉴스 북한 경비정이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공격해 6명의 국군이 목숨을 잃고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본 전역이 전쟁 공황에 빠저들고 있었다, 다음 날 요코하마에서열리는 한일 월드컵 결승전 겸 페막식 을 잎두고  있었기 때문, 당장 돌아갈 비행기도 없었다,

결승전 을 내눈 으로 봐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하필 대한민국의 안보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외 여기에 있나하는 자책감을 갖고 요코하마 경기장 으로  가 관중 속에 섞였다.

그런데? 스타디움  전광판에 김대중과 이휘호 부부가 나란히 귀빈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겄아닌가,!

주체 할수없는 충격 이 상황에서?그리고 이런 대통령 을  갖고 있는 국가의 국민이라는게  너무 부끄럽고 한심 스럽고,

 명색이  제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는  국군 통수권자가 제 나라 장병들이  죽어 나가는 참혹한  상황에서 저 자리에 앉아있는 대통령,

김정일에게 돈 처다 줘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제 나라 군대가 몰사 당해도 자신이 한반도  평화의 구세주라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시치미 뚝떼고 특별기 타고 일본으로 날아온 DJ,

난 그 자리에서 결심 하고 결심 했다, 내가 지상(地上)에서 사라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DJ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결코 인정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결코,!

귀국한 다음날-6월31일,순국 장병들의 합동 장례식은 삼일장으로 치러젔다,대통령 김대중,국무총리 이한동,국방장관 김동신, 그 누구도 장례식에 참석 하지 않았다,

DJ정권 시절 국가 정보원장.통일부장관.대통령 외교 안보 통일 특보 를지내며  햇볕 정책을 추진 했던 임동원,그는 6월4일 [조선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결식에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당시 우리 해군이 (작전)통제선을 넘어간잘못이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름은 금석(金石)에  깊이 새겨 역사속에 깊이 묻어 놓아야 한다,1976년 8월18일 ,북한군이 판문점 에서 시야 를 가리는 미루 나무를 제거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와 몽둥이로 무참히 살해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박정희 대통령은 미군에게 말한다,

미군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미루 나무 를 반드시 베어 내겠다,

한미 양국이 만약 북한이 저항하면 신의주까지 치고 올라갈 작전 계획까지 준비 하고 있었다,박정희는 3군 사관 학교 졸업식에 나가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고 외친다.한반도가 제2전쟁에 빠저 들수있는 순간들  드디어 미루나무 제거 작업 시작,!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에 철모와 군화를 갔다 놓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또 도발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인 내가 철모쓰고 군화 신고 전쟁을 진두 지휘하리라,얼마전에 작고 하신 박정희 시절 민정 수석 비서관 박승규 선생으로 부터 들은 증언 사건 발생 이틀 만에 김일성은 유엔 사령부에 사과하고야 만다,

 

대통령 에겐 영혼(靈魂)이 있어야 한다,

그 영혼(靈魂)이란? 국가다,

그게 있어야 국민을 감동시켜 하나로 단결시킬수 있다,

언론인 류근일 선생은 서울 대 정치학과 재학중이던 1961년4월 남북 학생 회담을 제안 했다가.5,16직후 박정희의 혁명 재판소에 의해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7년6개월간  형무소에서 청춘을 보냈고,

신문사 현역 논설위원으로 활동 하다가 민청 학련 사건으로 20년 10개월을 선고 받고 또 형무소 에서10개월을 보냈다.

모두 합치면 박정희 정권 18년동안 무려 8년 4개월 을 형무소에서 살았던 류근일 에게 어찌 간단한 형벌인가!

그러나 류근일은 1979년10월26일 박정희가 서거 하자 경기도 부천 시청에 마련된 박정희 빈소를 찾는다,

" 박정희와 화해 하겠다."

미뤄 짐작컨대 박정희가 국가에 대해 갖고 있던 영혼(靈魂)에대한 감동,? 인정.?이런게 심장 속에서 속구처 올라 왔기 때문에 박정희와 화해 했을겄이다,

두 거인(巨人)의 화해라고 말하고 십다,

MB가 집권 하는 동안 가장 가슴 뭉쿨하게  한 감동적 장면은 62년만에 하와이 미 공군 기지를 거쳐 귀국하는 6,25참전 용사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서울 공항 에 나가 국방 장관 김관진과 함께 거수 경례 를하는 모습 - 난 군대 갔다 오지 않은 대통령에 대해 살짝 용서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MB는 29일 열리는  제2연평 해전 10주년 기념식에 대한 민국의 종묘 사직을 지키는 국군 통수권자의 자격으로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그자리에서 묘윤숙의 시(時)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말 아무 움직임없이

하늘만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가숨속 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져 나온다

장미 냄새 보다 더 짙은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 하며

나는 듣노라그대가 주고간 마지막 말을 "

 

출처: 윤장준 칼럼 세상

 

 

 

                                   부천에서 월남 참전 절단 상이회원 김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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