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패망 37년........교훈은 현재 진행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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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6-24작성자 김윤청조회수 611 |
월남 패망 37년...........교훈은 현재 진핸형, 2012-04-27, 채명신(전 주월 한국군 사령과,베트남 참전 국가 유공자 전우회 총재) 4월 30일은 월남이 공산 월맹에 패망한지 37주년이 되는 날이다,종전 뒤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 났지만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재직한 필자에게 월남 전은 결코 잊을수 없는전쟁이다,단지 "패배한 전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교훈을 주기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이라는 주적을 목전에두고 있는 우리 국민 들에게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월남의 패인은 먼데 있지 않았다, 전쟁의 당사자인 월남 정부와 군부의 부정부패는 극심했다, 그때문에 국민 이 외면하고 저항하는 등 우방의 헌신과 희생적인 원조도 별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미국의회의 각종 조사위원회와 관리들이 월남의 부패상을 게속 폭로함으로써 미국민의 월남전 반대를 격화 시키고 잇엇다, 한편 월남 정부의 최고위층은 미국 정부 고위층에 월남 군이 미군을 대신 할수잇다는 점을 강조했고, 월남 군 내부에서는 미군의 작전 방식에 반발하는 발언들이 터저나와 미군 철수를 부추기는 양상이 되버렷다, 1964년 미국이 월남전에 뛰어 들면서 한국을 비롯한 자유 세계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 월남전의 장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파병한 또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이 주한 미군 2개 사단을 월남으로 전용 하는것을 막기 위해선 파병이 불가피 햇던 것이다,한국군 으로서는 위상은 높이되 희생은 극소화 하면서 월남 인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파월 부대의 전공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혁혁했다, 종군 기자들이 그 사실을 놓칠리없엇다. 특히 "런던 타임"은 맹호부대의 "고보이(goboi)"전략을 상세히 소개 했다,1966년 가을 서울에 온 국제 금융을 좌우하던 11개국 재무 실무 책임자들은 이 기사에 감동해 대한민국의 장래가 크게 유망하다고 판단 햇다, 그래서 한국의 경재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겠다며 26억7천만 달러를 내놓앗다,이것이 도화선이 돼 달러 차관을 위해 동분 서주 하던 한국 정부에 냉담 하던 외국의 은행,투자가,기업들이 대한 투자에 열중하는 게기가 되기도 했다, 파월 국군의 직접적인 경제 발전 기여도 빠뜨릴 수 없는 공적이다, 장병들이 외화로 받는 수당 등을 80% 이상 고국에 송금 했고,국군이 사용 하는 모든 보급품을 한국에서 조달토록 했으며, 한국 기업들이 사상 처움으로 월남에 진출토록 막후 역할을 할수 있었다, 월남의 주요 미군 기지들이 한국군 책임지역(TAOR)안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현지 제대 장병과 고국에서 오는 근로자가 2만5천명에 이르렀다.1971년 부터 미국의 신규 투자가 중단되자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해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됐다. 한국군 과 미군PX납품도 최대한 국산으로 하여 한국 내 공업 생산도 다양해젔다, 각종 무기와 장비도 신형으로 대체됐고 한국군의 전술 교리 등도 크게 향상 됐다, 급속도로 수출이 증가되고 중동에서 수천억 달러의수주 등으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75년 월남이 공산화 되자 공산 월맹은 월남전에서 주역으로 싸운 남쪽 베트콩의 주요 간부들을 모조리 숙청해 버렷다, 베트콩들은 통한에 눈물 을 흘려야 햇다,월남 참전에서 얻은 교훈은 부패하고 싸움에 무능하며 반미 감정이 강한 국가나 군대는 동맹관계도 필요 없고 도와줄 가치도 없다는것이다,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으로 성장 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과 지도 아래 온 국민이 땀과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다, 파월 장병들이 피 흘리고 목숨 바쳐 선봉 역할을 한 공을 인정해 국력에 걸맞은 명예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제2의 6.25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출처 ; 문화일보(2012-04-27)
부천에서 월남 참전 절단 상이회원 김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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