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수없는 숙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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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2-06작성자 손택수조회수 438 |
40년도 훨씬 넘던시절 옛날인가? 베트남 전장에서 한눈을 잃고 오랜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오니 감성이 남달리 풍부한 작은 어머님이 저를 붇들고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 사람의 눈이 일심정기(一心精氣)라는데 그 총명해보이든 눈을 잃고 오다니 이게 웬일이냐?" "괜찮아요 작은 엄마 이쪽눈은 괜찮아요" 오히려 내 어머님보다 더 애통해하시든 때가 엊그제인데 요즈음은 작은 어머님이 저를 보셔도 그리 안타까워하시지 않고 조금 손에 쥐어드리는 배추잎몇장에 흐믓해하시기만 합니다 세월이 그 아품을 묻어버린지도 벌써 4번도 더 넘게 변한 강산에 묻혀버린걸까? 안타까워하든 이웃들도 이제는 나의 부상을 아는듯 모르는듯 "뭐라도 해야지 놀고 있으면 어떻해?" 칼국수같이 먹든 친구의 충고가 자못 걱정하는 투로 말합니다 퇴직한지 7년동안 아무일도 안하는것인양 유유자적하는모습이 안됐다고 하는소리가 그렇습니다 "국가유공자들이 그렇게 아품을 갖고 사시는줄 몰랐습니다" 2003년인가? 6월에 어느방송국에서 이지역에서 모범적으로 사는 3명의 전상용사들의 아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을 인간극장 비슷하게 역어 방송했든적이 있습니다 한사람은 두다리를 절단했고, 한사람은 한쪽다리를 절단했고, 한사람은 한눈을 잃고 의안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좌절하지않고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우리친구들입니다 나도 같이 .... 전쟁도 끝난지 40여년 그 모진 아품의 세월을 살아가는것이 어디 눈으로 보이는것이 전부였겠습니까? 그래도 그 세사람은 꿋꿋이 이 모진세상을 그 아품, 속으로 삭이면서 명랑하게 또 단란하게 살아가는 참으로 눈물겨운 삶이 있었습니다 그 아품을 방송으로 본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전상국가유공자들이 그렇게 아푸게 살아가시다니요.... 몰랐습니다" 어디 그 보이는것뿐이겠습니까? 일생을 짤랐든 다리를 몇번이나 다시 절단하는 수술을 감내해야하는 그 모진 고통의 세월을 얼마나 알고 잇겠습니까? 조금이나마 걷는데 도움이되라고 맞춰 끼운 의족이 뼈골을 파고들어 자르고 또 자르고 그래도 아파서 진통제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 후벼파낸 눈자리에 보기싫지않게 해넣은 의안을 몇번이나 다시 해넣으면서 밤마다 안약을 넣고 파고드는 고통을 참기위해 손으로 감싸쥐고 뒹굴르기 몇날 몇밤인지요 군병원에서의 수술이후 지금까지 벌써 4번째 이제 약이 아니면 지탱할수없을정도로 약해진 상처에 어쩔수없이 얼마전 또 메스를 대고 말았습니다 "이 수술해도 이젠 약을 계속 넣고 살아야 돼요" 수술하든 보훈병원 안과 여의사의 충고가 아니드라도 잘알지요 약해진 살집이 이젠 치료도 더딘지 염증이 계속아물지않고 눈가에 진물이 돌고 뒷골까지 엄습하는 통증에 밤잠을 설칩니다 1995년인가? 보훈처에서 실시한 광복50주년보훈문예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때 그 글을 읽은 직장 동료 여직원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손주사님! 아푸면서 말도 안하시고 어쩌면 그렇게 .....그렇게 아푸게 살지말고 아푸면 아푸다고 얘기하시고 그러세요" 안타까운 그들의 고운 눈길에 그래도 마음 위로를 받았든적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국가에서 많은 혜택을 주고 살게 해주잖아?" 어느 소위 민주화인사입네 하는사람이 가소롭다는 눈초리로 빈중댑니다 "그럼 그 혜택 다 줄테니 당신의 한쪽 다리하고 한눈을 빼버릴가요?" 어느 문학카페에서 제출한 수필을 보고 신인상을 준다기에 참석했더니 무슨 국회위원장 보좌역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혜택운운하기에 과 박치기 일보전까지 간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덤을 줄수없다면 그나마 뺏어갈생각이나 하지 말아야 하는것 아닌가요? 며칠째 계속되는 얼음주머니 수술부위에 쓰리도록 문대다보니 괜히 낮에 어느사람이 충혈된 내 눈을 보고 "왜 눈에 깨씨바리가 생겼냐? 뺄갛게 해가지고 다녀?" 무심토 하는소리가 나에겐 비수가 되는 소리에 뒤집어지는 속을 진정하고 "그래 지금의 이 아품도 숙명[宿命] 이고 남의 조롱석인 빈중거림도 숙명[宿命] 이고 어쩔수없이 모두가 안고 가야할 숙명[宿命] 이라면 참아가는것도 내 피할수없는 숙명[宿命] 일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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