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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차이석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제
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70



◈ 9일(금) 오전 11시, 백범기념과 대회의실 ◈
◈ 각계인사,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등 200여명 참석 ◈

조국광복 운동에 헌신하신 「동암 차이석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제」 및 평전출판회가 9일(금) 오전 11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독립유공자유지계승유족회(회장 김삼열)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행사는 김덕규 국회부의장, 김국주 광복회장, 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광복회원, 독립유공자유지계승회 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유족대표 차영조 선생의 평전봉독,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의 평전봉정사, 국회부의장·광복회장·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 독립군가 합창 순으로 진행된다.

동암 차이석 선생(1881.7.26~1945.9.9)은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출생하여 1907년 대성학교를 졸업하고, 동교 교사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1년 사내총독(寺內總督) 암살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13년 3월에 석방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한 뒤,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독립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1921년 6월 편집국장이 되어 임시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교포들에게 독립사상과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1922년 2월에는 임시의정원의 평안도 선출의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였으며, 1930년에는 부의장에 피선되고 1933년 12월까지 의정원의원으로 재직하였으며, 1932년 11월 국무위원으로 선출된 후 광복될 때까지 임시정부와 운명을 함께 하였다.

1932년 임시정부가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분당 싸움이 거듭될 때에 임시정부를 지키며 정부의 재건에 부심하여 1935년 11월에 위기를 극복하고 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임시정부의 환국준비에 분주하던 중 동년 9월 9일 이국 땅 중경(重慶)에서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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