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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선생 49주기 추모제
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86

◈ 10일(火) 오전 11시 강북구 수유동 선생 묘역에서 전통 묘제로 봉행 ◈
◈ 광복회원, 성균관 및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30여명 참석 ◈

유림의 위대한 지도자로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하시며 평생을 불의, 부정, 불법과 타협하는 일이 없이 강직한 성품으로 유림계를 단합시켜 민족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심산 김창숙선생 43주기 추모제」가 10일(火) 오전 10시 강북구 수유동에 소재한 선생 묘역에서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정범진) 주최, 성균관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제는 고진화 의원, 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성균관 관계자 및 기념사업회 임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신(迎新), 설소과주찬(設蔬果酒饌), 강신(降神), 참신(參神), 진찬(進饌),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유식(侑食), 수조(受胙), 사신(辭神), 철상(撤床), 준(餕), 헌화·분향 등 전통 묘제(墓祭)형식으로 봉행된다.

김창숙 선생(1879. 7.10~1962. 5.10)은 경북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에서 출생하여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함께 청참5적소(請斬五賊疏)라는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국채보상운동 활동과 사립학교인 성명학교(星明學校)를 세워 민족주의 교육을 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신규식, 김구 등과 함께 임시의정원을 조직하였으며, 부의장직에도 당선되어 구국활동을 위해 혼신을 다하였다.

또한 선생은 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중화국민당과 연계하여 한·중 공동 항일운동을 추진토록하는 한국독립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1920년에는 상해에서 임복성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을 위한 사민일보(四民日報)를 창간하고, 신채호와 함께 독립운동기관지 천고(天鼓)를 간행하였다.

1926년 일제 식민지통치 아래 점차 상실되는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결사대를 파견, 식민지기관을 파괴하기로 하고 이동녕, 김구, 김원봉 등과 상의하여 의열단의 나석주를 파견하여 그 해 12월 동양척식회사를 폭파케 하였다.

광복후에는 전국 유림을 결속시켜 유림재단을 정리한 후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였고,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육영사업을 목적으로 성균관과 성균관 대학을 재건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민족을 위해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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