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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 송진우선생 탄신 115주년 추모식
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99



◈ 7일(土) 오전 11시 30분 서울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서 ◈
◈ 각계인사, 광복회원, 유족 등 200여명 참석 ◈

위대한 교육자이자 언론인으로서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참여하고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하시며 언론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하신 「고하 송진우선생 탄신115주년추모식」이 7일(土) 오전 11시 30분에 서울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서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권이혁)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황인환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홍일식 前 고려대학교 총장, 김창식 前 교통부 장관, 광복회원,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창현 중앙고등학교 교장의 약전봉독, 권이혁 이사장 및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 이철순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추모강연(“고하 송진우의 현실주의 정치노선”), 헌화·분향, 송상현(서울대 법대 교수) 유족대표의 예사 순으로 진행된다.

송진우 선생(1889. 5. 8~1945.12.30)은 전남 담양(潭陽)에서 출생하여 1908년 김성수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915년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인 1919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며 천도교측과 기독교측의 연합을 주선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3·1운동이 일어난 후에는 이 운동을 초기에 기획한 48인의 하나로 지목되어 일경에 피체, 서대문감옥에 1년 6개월간 구금되었으나,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1921년 9월 14일 동아일보가 “주식회사 동아일보”로 개편되자 제3대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언론인으로서 물산장려운동 및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25년 7월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태평양연안 기독교청년회 주최로 범태평양회의가 개최되자 서재필과 함께 국내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26년 3월에는 국제농민회 본부로부터 조선농민에게 전하는 글을 동아일보 3월 5일자에 게재하였다가 무기정간을 당함과 동시에 일제 검찰에 구속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0월 제6대 동아일보사장에 취임한 선생은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손기정선수의 우승사진을 게재하면서 손 선수의 앞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지우고 실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는 제4차 무기정간을 당하고, 선생은 사임하였다.

광복 후 선생은 한국민주당을 조직하여 수석총무로 활동하였으나, 1945년 12월 30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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