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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순국 제95주기 추념식
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406

◈ 26일(土) 오전 10시, 서울교육과학연구원(남산공원)에서 ◈
◈ 안춘생 유족대표,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 300여명 참석 ◈

중국 하얼빈에서 침략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주살하여 자주독립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실의에 빠진 우리겨레에게 크나큰 희망과 용기를 주신 안중근 의사의 순국 95주기 추념식이 26일(土) 오전 10시 서울 남산에 소재한 서울교육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황인성) 주관으로 열렸다.

추념식은 안춘생 유족대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상순 숭모회 이사의 약전봉독, 박귀언 숭모회 이사의 최후의 유언 봉독, 황인성 이사장의 추념식사,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서울시 정무부시장·광복회장의 추념사, 3·1여성합창단 및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의 추모가, 헌화, 안중근 학술연구지 봉정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추모식은 순국 95주기를 맞아 일본에서 안중근의사 숭모사업을 꾸준히 전개해온 사이토타이겐(齊藤泰彦) 大林士 주지 등 일본측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하며, 오후 6시부터는 육군회관에서 숭모회와 일본측 행사 참가자가 모여 그동안 안의사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친선교류회를 갖는다.

안중근 의사(1878. 9. 2~1910. 3.26)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하고, 1908년에는 의병을 일으켜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 경흥(慶興)·회령(會寧)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후 다시 노령(露領)의 블라디보스톡, 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강구하고 1909년 봄에 김기열, 백낙길, 우덕순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같은 해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계획하고, 1909년 10월 26일 9시경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의 재정대신 꼬꼬흐체프와 함께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향하자 권총 4발을 쏘아 주살시키고, 일본 헌병이 안중근의사를 체포하려고 달려들자 하늘을 향하여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세 번 외치고 체포에 응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었으며,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6회의 공판을 받고, 14일 사형을 선고받아 3월 26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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