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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달의 독립운동가』선정 발표
작성일 2005-11-22작성자 관리자조회수 468

◈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장서를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한 김복한(1860.7~1924.3) 선생 ◈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활동 등을 전개하신 지산 김복한(金福漢)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하였다.

선생은 1860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1894년 승정원 우부승지로 국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던 중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는 갑오변란이 발생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홍주로 낙향 했다.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12월 1일 내종형인 이설, 안병찬 등 유생들과 함께 180여명의 민병들을 모아 거의하여 홍주성에 창의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의병에 참여하였던 홍주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선생 등 의병 지도부를 구속하는 바람에 홍주성은 친위대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서울로 압송된 선생은 10년 유배형을 받았다.
1905년에는 일제가 을사늑결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권을 강탈하자 이설과 함께 상경하여 을사 5적을 처벌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세력을 축출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제기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향하여 을미의병의 동지인 안병찬 등과 함께 민종식을 추대하여 의병을 일으켜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 기세를 떨쳤지만, 일본군의 공격으로 성을 빼앗기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또한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서를 보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루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24년 3월 29일, 6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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