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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의사 순국 78주기 추모식
작성일 2011-03-14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578

◈ 10일(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열려 ◈

대일항쟁기에 적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성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한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린 “이봉창의사 순국 78주기 추모식”이 10일(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내 의사 묘전에서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차창규 광복회 사무총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인근 기념사업회 이사의 약사보고와 문국진 기념사업회장의 식사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차창규 광복회 사무총장 대독)의 추모사와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이봉창 의사(1901. 8.10~1932.10.10)는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1931년 1월 중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계획·준비하였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고, 12월말 동경에 도착한 이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대대목(大大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수류탄은 일본 궁내대신(宮內大臣)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하여 일장기기수(日章旗旗手)와 근위병(近衛兵)이 탄 말 두 필 만을 거꾸러뜨리고 안타깝게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된 의사님은 같은 해 9월 30일 동경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시곡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하셨다.

비록 일왕 유인을 폭살시키는데 실패는 하였지만, 그의 장거는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전선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였고 동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보산(萬寶山) 사건이래 한·중민의 감정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김구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하여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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