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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5주년, 故 유찬희 · 유기문 부자 등 순국선열 · 애국지사 338명 포상
작성일 2011-03-14작성자 관리자조회수 1,632

◆ 건국훈장 218명,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 ◆
◆ 전체 포상자 338명 중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의 발굴·포상이 318명 ◆  

 국가보훈처(처장 김양)는 오는 8월 15일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북간도와 중국 관내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유찬희?유기문 부자를 비롯하여 33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ㅇ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18명(독립장 5, 애국장 108, 애족장 105),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으로서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이번 포상자는 총 338명으로 1995년의 광복 50주년 광복절 포상 이후 단일 계기 포상 규모로는 역대 최대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65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되며, 해외에 거주하는 유족에게는 재외공관을 통해 전수된다.
총 338명의 포상자 가운데 94%에 달하는 318명은 국가보훈처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행형기록 및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아 분석,검토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동일인 여부와 활동 전후의 행적을 확인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발굴하여 포상하게 되었다.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사 등 역사학 전공자를 주축으로 2005년에 발족한 국가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은 그 동안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신분장지문원지, 가출옥에 관한 서류, 판결문 등의 국내 사료는 물론 중국 자료,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 등에 산재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국내와 중국 관내 및 만주, 노령, 일본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다수 발굴,포상하여 왔다.
이번 발굴 포상자 318명 중 42명은 판결문 등 공적 입증자료를 통해 활동내용을 발굴한 후 다시 읍,면,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역으로 추적하여 후손을 찾아 포상함으로써 유족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806, 애국장 3,669, 애족장 4,547, 건국포장 866, 대통령표창 2,198명 등 총 12,209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과 기존의 사료 수집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외 소장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원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여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금년도 제65주년 광복절 포상자 중 주요 인물의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안홍근, 안중근 가문의 15번째 독립유공자 배출 
1918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에 참가하고 그 해 여름 독립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제국주의 간섭군의 앞잡이였던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시베리아 내전 후 블라디보스톡 수청촌(水淸村)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안홍근(安洪根)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안홍근 선생은 안중근 의사(1962, 대한민국장)의 4촌 동생으로, 국가보훈처에서 선생의 공적을 발굴하여 포상하게 되었다. 

이로써 안중근 의사 가문은 이번 안홍근 선생에 대한 포상으로 그 동안 포상된 안명근(1962, 독립장)안춘생(1963, 독립장)최익형(1977, 독립장)안경근(1977, 독립장)안정근(1987, 독립장)안봉생(1990, 애국장)오항선(1990, 애국장)조순옥(1990, 애국장)안원생(1990, 애족장)안공근(1995, 독립장)안낙생(1995, 애족장)조성녀(2008, 애족장)?안태순(2009, 애족장) 선생 등 모두 15분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함으로써 올해 안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ㅇ 북간도 독립운동 지도자 유찬희 선생 부자1919~1920년 간도 연길과 노령 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대한독립기성총회, 한인상무총회, 대한국민회 간부로 활동하고 1923년 이후 북간도와 노령 연해주 일대에서 동성노농공사(東省老農公司)와 국민위원회 위원 등으로 이 지역 독립운동을 이끈 유찬희(柳纘熙)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다.

또한 선생의 차남으로 1930년 이후 중국 상해와 천진 등지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과 흑색공포단에 가입하여 일제의 주요시설 폭파, 친일파 처단 등 강력한 의열투쟁을 전개한 유기문(柳基文)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이번에 유찬희,유기문 선생이 포상을 받게 됨으로써 이미 포상을 받은 선생의 장남 유기석 선생(2008, 독립장)과 함께 3부자 모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의병으로 순국한 나주 수성최씨 일가 네 분1909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친척 3명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였고 같은 해 8월 10일 일본 헌병에 발각되어 피살 순국한 최택현(崔澤鉉)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또한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순국한 4촌 최광현(崔匡鉉)?최병현(崔柄鉉), 아들 최윤용(崔潤龍) 선생 등 3분에게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이들 나주 수성최씨 일가 네 분의 포상은 남원의병장 기우만(1980, 독립장)선생의『송사선생문집』(1931) 속에서 관련 내용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대원군의 외손으로 독립운동의 가시밭길을 택한 조남승 선생
1905년 11월 조병세 등과 을사오조약 반대 소(疏)를 올리고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에서 개최된 독립기념일 축하행사 참석(1921), 상해 중한호조사 활동(1923), 북경에서 항일잡지 『도보(導報)』의 동인(同人)으로 격문 제작 배포(1924), 한국유일독립당 북경촉성회 집행위원(1926) 등으로 활동하다 1932년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 중 인천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조남승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흥선대원군의 외손자이며, 고종황제와는 내종(內從) 관계로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일제의 남작(男爵) 수여를 거부했던 조정구(趙鼎九) 선생의 아들이다.
『성서조선』사건으로 옥고 치른 김교신, 송두용 선생
1927년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1942년 3월 동 잡지에 게재된 권두언 「조와(弔蛙)」를 집필하여 민족주의를 고취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교신 선생, 함께 활동하다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송두용 선생 두 분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이른바 『성서조선』사건의 발단이 된「조와」는 “지금 우리에게 오는 모든 동상(凍傷)은 춘양(春陽)의 부활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데 없을 수 없는 과정 (중략) 우리의 소망은 오직 부활에 있고 부활은 봄과 같이 확실히 온다”고 하여,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되어 관계자 여럿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이로써 ‘성서조선 사건’과 관련해서는 함석헌(2002, 건국포장)유달영(2004, 건국포장) 선생과 함께 모두 네 분이 포상을 받게 되었다.
박희성,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임명한 최초의 비행 장교
1921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 김종림(金鐘林) 등이 독립전쟁에 참전할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Willows)에 설립한 비행사 양성소를 졸업한 뒤 같은 해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회의에서 비행장교(참위= 소위)로 임명된 박희성(朴熙成) 선생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박희성 선생에 대해서는 1995년에 이미 정부가 관련 공적을 발굴하였으나 생몰년 등이 확인되지 않아 보류하다가 최근 캘리포니아주 공공보건과에서 발급한 사망확인서(STANDARD CERTIFICATE OF DEATH), 묘소 등이 확인되고,『신한민보』등에서 공적내용이 보완되어 포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기생 신분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발굴
1919년 4월 1일 황해도 해주 읍내에서 기생 신분으로 동료 기생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문응순 선생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또한 같은 기생 신분으로 문응순 선생을 따라 해주에서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옥운경,김성일,이벽도 등 세분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이들은 2,000여 명의 대규모 군중이 참여한 해주읍 시위에 동료 기생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문응순 선생 등에 대한 포상은 신분장지문원지와 『매일신보』등에서 공적이 확인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천시되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이라는 거족적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례로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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