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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이시영선생 57주기 추모식
작성일 2011-03-14작성자 관리자조회수 808

◈ 17(토)일 오전 11시 남산 선생의 동상 앞에서 열려 ◈

민족의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이루고자 독립군을 양성하고 임시정부의 법무총장, 재무총장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성재 이시영(李始榮)선생의 57주기 추모식」이 17일(토) 오전 11시 남산 이시영선생 동상 앞에서 유족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병구 서울보훈청장을 비롯해 남만우 광복회부회장, 독립운동관련단체장, 광복회원, 유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력보고, 광복회장(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대독)의 추모사, 추모가, 헌화·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성재 이시영선생(1869.12. 3~1953. 4.17)은 서울 저동에서 태어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안창호선생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추진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6형제의 가족 50여명과 함께 남만의 유하현 추가보(鄒家堡)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준비를 착수하였으며,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였다.

1911년 4월에 이곳 대고산(大孤山) 중에서 노천군중대회를 열어 경학사(耕學社)라는 자치단체를 창설하고, 이상룡을 사장에 추대하여 민생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내걸고 동포들의 정착과 농업생산을 지도하는 등 최초의 항일 구국의 자치단체로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1912년에는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로 확장하였다. 1920년 폐교될 때까지 3,500여명의 독립군 간부를 배출하였으며, 이들이 그 유명한 청산리독립전쟁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1919년에는 북경에서 이동녕·조성환 등과 함께 3·1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법무총장, 재무총장,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또한 광복 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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