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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박사 44주기 추도식
작성일 2011-03-14작성자 관리자조회수 467

◈ 18일(토)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

 ◈ 각계인사,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등 300여명 참석

 일제에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초대 대통령의 애국정신 기려 ◈

독립운동에 헌신하시고 초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으신 『우남 이승만박사 44주기 추도식』이 18일(토)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도식은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관련단체장 및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사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송기성 목사의 기도, 서울장로성가단 코랄카리스의 특송, 김진홍 목사의 설교, 고인의 말씀(육성녹음),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박정훈 전 국회의원, 조성래(청년대표)의 추도사에 이어 분향 및 이인수 박사의 유족인사 등으로 진행된다.

우남 이승만박사(1875.3.26~1965.7.19)는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하였으며,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여 협성회보(協成會報)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주필이 되어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전개하였다. 또한 협성회보가 정부의 탄압으로 폐간되자 일간지인 매일신문(每日新聞)을 발행, 주필로서 계속 활동하였다.

한편 1904년 그의 정치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독립정신」을 저술하여 국제간의 외교와 외국인과의 친선의 필요성, 낡은 사고방식에서의 탈피, 국권 존중과 자유권을 소중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워싱턴 대학, 하바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을 순례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학문을 접한 뒤 1910년 귀국하였고,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대표로 임명되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한국·태평양」신문을 발간하고,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4월에 상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였다.

1940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16일 귀국하여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같이 하나로 뭉치자”고 역설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에서는 우남 이승만박사의 공훈을 기리어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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