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 기본법에 대한 모순점(잘 읽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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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2-07작성자 김선순조회수 3,872 |
누구나 국가보훈기본법을 대충 훑어봐도 이 법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도 몇 가지를 세미나에서 지적했다.
첫째, 희생/공헌자 혹은 국가보훈 대상자의 개념이 문제다. 법 제3조 1호에서 이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다’목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개념은 지극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자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입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의에 의하면, 동의대 사건에서 공권력에 대항해 무장투쟁한 자도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희생 내지 공헌한 자로 둔갑할 수 있게 된다. 심히 불합리한 결과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의대 사건을 진압하다가 희생된 경찰관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유민주주의 탄압에 앞장섰다는 말인가?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국민이 금일의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전 국민을 국가보훈대상자로 보는 것은 기이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결국 ‘다’목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란 부분은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전국민을 국가보훈대상자로 만들거나 혹은 이념논쟁이나 남남갈등 소지가 다분한 문구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정히 보상을 해야 한다면 해당 특별법에서 그에 관한 사항을 정하면 될 것이다. 국가보훈의 개념을 혼란하게 만드는 표현은 마땅히 삭제해야 한다.
둘째, 국가보훈기본법은 전체 30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희생/공헌자의 예우 및 지원에 관한 규정은 고작 4개 조문밖에 안된다. 그 나머지 내용은 대부분 정부조직이나 위원회 구성, 국가공무원의 활동에 관한 것들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든다. 매월 최저임금의 몇배 이상부터 몇배 이하로 지원하되, 등급을 나누어 지원할 수 있도록 구체화해야 한다. 현행 규정대로 할 경우 각 개별법률에 따라 지원을 할 수밖에 없어 기본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은 자신이 6·25 참전 유공자라고 하면서 한 달에 6만5천원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국가가 자기를 거지 취급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제주4·3사건 관련 자, 거창사건 관련 자, 노근리 사건 관련 자들은 매월 수십만원씩 지원금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형평성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래 가지고 앞으로 누가 전쟁에 나가길 바랄 수 있겠는가.
셋째, 앞에서 일부 지적했지만, 이 법이 국가보훈에 관한 기본법이 될 수 있을지 하는데 심히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 법 제4조 제3항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 또는 주민의 복지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시행하거나 법령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때에는 국가보훈대상자를 우선 배려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훈시규정 정도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서가 돼서 실시하는 각종 복지정책에 있어서 국가유공자 내지 희생/공헌자를 얼마나 배려할 지 의문이다. 십중팔구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 분명하다. 좀더 구체성을 띠어야 할 것이다.
넷째, 이법에서 나타나는 우스꽝스런 부분이 있다. 국가보훈기본법 제7조(국가보훈대상자의 품위유지책무)에서는 “국가보훈대상자는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사랑 정신이 국민의 귀감이 됨을 감안하여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보훈대상자들(대부분 고령자들이다)에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으면서 품위유지 의무를 부과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섯째, 법 제11조(국가보훈위원회)에서는 국가보훈에 관한 주요시책을 심의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하에 국가보훈위원회를 설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원회는 국가공무원과 해당 전문가들로만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13조 참조). 국가보훈 대상자들의 참여(관련단체의 장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사를 위촉하면 될 것이다)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이들의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수시로 청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방통행식의 국가보훈정책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여섯째, 법 제15조(조사·연구기관의 설치·운영 등) 제1항에서는 “국가는 국가보훈 분야에 관한 조사·연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어 동조 제2항에서는 “국가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사·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조사·연구기관을 설치하거나, 연구소·대학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관계 전문기관에 조사·연구를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문은 국가보훈처 산하에 별도의 국책연구기관을 설치하겠다는 의도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에 관한 국책연구기관이 없어서 지금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연구예산이 있으면 대학이나 연구소에 지원해서 좋은 연구용역 결과를 얻어내면 된다. 국책연구기관 하나 운영하려면 최소한 30억원 이상이 들게 되어 있다. 그러한 예산으로 좀더 많은 보훈대상자를 지원하는 것이 더욱 나을 것이다. 공무원 퇴직 후에 나갈 자리 만들기 위해 국책연구기관 만들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현행 법규정은 현행 법체계와도 맞지 않는 규정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3조(연구기관의 설립제한)에서는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연구기관"이라 한다)을 설립하지 못한다. 다만, 과학기술분야 연구기관의 설립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현행법 체제 하에서는 국가보훈처 산하에 별도의 국책연구기관을 만들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규정이 들어가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 밖에 세미나 당일에 한국전쟁 유자녀에 대한 보상혜택에서의 제외, 성년이라는 이유로 한 지원 배제 혹은 차별(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에서는 성년 유자녀에 대해서도 지원하고 있다)도 지적됐고, 북파공작원과 같은 특수임무수행자에 대한 지원과 명예회복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차제에 우리는 국가 및 사회의 보훈정책과 태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물질적 혜택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사회가 이들을 존경할 수 있는 정신적인 명예회복과 보상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먼저 혹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명예와 같은 정신적 보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외국과 현저하게 차이 나는 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이와 관련, 월남전에 참전한 한 분은 일어나서 월남전 참전 군인을 미국의 용병으로 규정하는 좌파들의 인식이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고, 이 같은 입장은 월남전 참전 군인들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들에 대한 편지쓰기를 시행하고 있으며 워싱턴, 뉴욕 같은 도시에서 이들의 이름을 딴 거리나 공원, 기념관이 있는가 하면 기념수를 심어 시민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국가유공자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인 반면 우리나라에선 동정과 부담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국가보훈에 대한 국민적·사회적 의식이 바로 설 때 지금 흔들리고 있는 나라의 정체성도 올바로 세울 수 있다고 할 것이다.(Konas)
제 성 호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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