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달)치마무덤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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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6-04작성자 손택수조회수 824 |
호국보훈의의달)치마무덤을 찾아서
희미한 광솔불 아래 남편의 등뒤에 앉은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바늘 끝에 실을 감아 먹물을 적셔 윗옷을 벗은 남편의 등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내일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이 만약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많은 시체들 중에서 남편의 시체를 찾기 위해 등에 표시를 하는 것이다. 또한 결혼하지못한 자식은 그 어머니가 그와같은 바늘로 등에 표시하며 부디 내 아들 살아만 달라고 기원했을것이다. 그러면서 아내나 어머니는 바늘로 등을 찌를 때마다 흐르는 피를 속치마에 묻히고 있었으니 혹시 등에 표시를 했어도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여 시체를 찾지 못한다면 시체대신 그 피묻은 치마를 묻고 무덤을 만드니 이것이 "치마무덤"이라는것이다. 죽음을 앞세우고 전쟁터로 나가는 남편이나 자식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아내나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팟을 것이며 그 밤이 왜 그리 짧기만 한지 새벽닭 우는소리가 너무나 야속하고 세상살이가 원망스럽고 한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우리민족이 생겨난 이래 멀리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의 비극은 얼마나 많았으며, 얼마전 모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는 연속극“연개소문 대조영등”에서 보았듯, 그많은 죽음의 병사들을 찾아 헤메던 아내와 가족들의 비통함이 얼마나 컷으며 그럴적마다 전사한 남편이나 자식의 시신조차 찾지못한 가족들이 만든 많은 “치마무덤”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역사가 생긴 이래 900여회의 외침을 당했다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치마무덤이 만들어 졌을까? 우리 대한민국이 건국된이후,우리는 현충일(顯忠日)이라는 추념(追念)일을 제정하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다. 몽고의 침입, 임진왜란․병자호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6․25 전쟁,월남전쟁파병,대간첩작전등 고달픈 역사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슬기롭게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날을 하루 잡으니 이날이 6월 6일 현충일이다. 현충일 제정은 6.25전쟁이 끝난후,1956년에 정해졌는데 현충일이 6월6일로 정해진 제정의 의미는 고려 현종때부터 전쟁터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일년24절기중 망종(芒種)일을 택해 지냈으며, 또, 망종일을 택해 전사한 장병의 유골을 고향에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24절기중 망종(芒種)일이 일년중 거의 6월6일이 됨으로 이날을 현충일로 제정하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추념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오늘 새삼스레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매년 6월6일 현충일날 국기를 달러나와보면 내가 날짜를 잘못안것은 아닌가 할정도로 조기를 단 집이 한집도 안보여 옆골목을 기웃거려보아도 겨우 한집정도 조기를 달았다 그집을 가만다가가 보니 그집은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집이었다 이제는 조기다는것조차 귀찮아진건 아닐런지.... 아님 조기가 뭔지 현충일에 의미도 아예생각조차 없는것은 아닌지 무관심한 세상이 원망스럽다 매년 시청에서 주관하는 추념식을 참석하니 지방 유명 시인의 추모헌시가 그렇게 가슴에 와닿을수가 없다 "초연속에 사라저간 저---거룩한 영혼들이여! 님들이 피흘린 이 조국 산하는 이제 아름다운 번영에 나라로 발전해나가고있습니다 영령들이시여1 부디 고히 잠드소서!" 50년전 이역만리 타국전선에서 어느고지점령임무수행중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선명이 떠오름은 이제 나이따라 굳세었든 마음도 점점 약해지는것은 아닌지.... 추모헌시가 끝날즈음 눈가에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는 없었다 그래 말로만 추모추모하지말고 올해는 국립묘지라도 찾어가리라 다짐을 하면서 추념식에 참석한 일행들과 헤어진후 가까은 사람한명 데리고 이곳 충주 근처에 장미산성 옛날 성터를 찾아 배낭을 짊어젔다 한번 의미있는 등산해볼까? 16년전 33년의 공직생활 퇴직여행을 동해바다 "독도"로 했듯이 오늘 현충일엔 역사에 현장을 다녀오는것도 의미있을게니까 숨가뿌게 올라간 옛 성터엔 아마도 삼국시절에 축조된 성이 이제는 천년세월 풍파에 무너지고 쓰러저 그 형체가 길게 산 자락을 감싸고 있다 이곳이 삼국시절에 서로 죽이고 빼앗았던 전장터였을테니 행여 치마무덤이 잇을런지 몰라? 산자락을 빙둘러 약 2킬로미터가량 이제는 무너진 돌무더기 성터를 쫓아 가시덤불에 팔뚝을 찟기면서 헤매고 헤매었다 군데 군데 돌무더기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가 찾는 치마무덤이길 바라는것은 애당초 무리였던것 같다 아무런역사지식없이 치마무덤을 찾는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그래도 산정상에서 바라본 시원한 저 눈아래 평화로운 이 산하가 어딘가에 묻혀있을 돌무더기 치마무덤에 영혼들이 지켜낸 값진 유산일게야! 저 멀리 공군기지에선 계속 전투기가 쉴새없이 뜨고 내린다. 천년전 한덩이 한덩이 돌을 짊어지고 흐르는 땀방을 씻어내며 이곳 산정상에 올라 성을 쌓았듯 저 아래 눈앞에 굉음을 내며 솟아오르는 전투기의 젊은 조종사도 뜨거운 가숨으로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리라 그런것만 느낀것도 오늘 산행의 의미는 있겠지.. 애써 자위하며 내려와 저무는 서녘하늘을 바라보며 아침에 게양한 조기를 쑥스럽게 걷어내는 내맘이 다른해보다 더 무거운건 같이 전쟁터에서 임무수행하다가 전사한 놈들 생각이 새록새록 자꾸 떠오르는게 나도 이제 나이따라 내맘도 약해지는것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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