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쟁의 영웅 채명신 장군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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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1-28작성자 김성대조회수 1,159 |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장군 별세
『지난 20세기의 전쟁 영웅이 또 한 분 돌아가셨다』
주월 사령관으로 6.25부터 활약을 하여 주월사령관으로 4년을 복무하 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고 채명신 장군은 항일운동을 했던 부친으로 인 해 공산주의자들의 탄압대상이었다. 그는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한 이후 중대장으로 송악산 전 투와 태백산 게릴라 토벌 전을 벌이다 6.25를 맞았다. 특히 1951년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을 이끌며 백골병단이라는 특 수부대를 창설하고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연대장과 참모장을 지낸 그야 말로 “전장(戰場)의 사나이’였다. 이후 베트남전에서도 월맹 공산군과 전투를 치름으로써 그는 평생을 공산주의자들과 싸운 군인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해방 후 북한지역에 살면서 공산당을 직 접 경험해 누구보다도 공산당의 실체를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생을 공산당과 싸워 이 나라를 지키고 세계 평화수호에 이바지한 채 명신 장군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참 군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다.평생을 이런 모습으로 살아오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남긴 한 마디가 행하여지고 있는 현실은 이 나라도 미래가 있고 확신을 가지 게 해준다. 고인 께서는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고 유 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군관계자는 "별세한 장군은 현충원에 마련된 장군 묘역에 안장되 지만 고인이 별세하기 전 유족에게 사병 묘역에 묻히길 희망해 받아들 이기로 하고 그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묻히게 될 사병묘지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은 3.3㎡에 불과하다. 고인의 비석크기 도 일반사병과 동일하다.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 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다. 파월참전자 회장을 맡아왔던 고인이 추모행사를 해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트 남전의 영웅인 고인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를 졸업하고 이듬 해 6ㆍ25 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다. 1953년에는 미 육군보병학교를 졸 업했다.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5년 주월사 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 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과 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도 역임했다. 김 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방문, 유 족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할 계획이다.국방부 관계자는 "장군 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 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 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고 채명신 장군님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월남전 참전 전상용사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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